
주요 외신 보도에 따르면 미국 내의 금융권 인사들을 이구동성으로 “올해 금리 인상이 불가피했지만 예상치 못한 현재의 상황에서 주가 폭락 등의 여건을 고려하면 대출금리 인하가 오히려 불가피한 상황이 됐다”고 진단한 가운데 ‘위드 코로나’ 시대 개막과 함께 호주,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영어권 국가에서 강력히 대두돼온 ‘금리 조기 인상’ 여론이 우크라이나 사태로 덮여질 전망이다.
호주 역시 결국 기준금리 인상 일정이 늦춰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호주 등 세계 주요 국가의 중앙은행은 유가 폭등 등으로 인플레이션이 상승할 것이라는 점에서 무작정 금리 인하 카드를 고수하기도 어렵다는 점에 난감한 분위기다.
호주중앙은행(RBA)은 2021년의 전국적인 기록적 집값 폭등에도 불구하고 금리 인상은 점차적으로 단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시드니 모닝 헤럴드와 디 에이지가 국내 경제학자들을 대상으로 자체 조사한 결과 올해 8월까지 금리 인상은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고, 일부 학자도 현재의 국내외 정세를 살펴볼 때 올해 안에 금리 인상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호주는 지난 2020년 11월 이후 역대 최저치인 0.1%의 기준금리를 14개월째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유가 급등으로 인플레이션이 치솟을 경우 상황은 예측 불허이고, 더불어 코로나19 팬데믹의 장기화로 악화된 가계부채 문제 역시 변동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자원 민족주의 부활하나?
한편 세계 경제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로 신냉전 시대가 본격화할 경우 자원 민족주의가 부활할 가능성에 긴장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기름과 곡물 등 국제 원자재 시장의 불안을 키우며 자원 확보 경쟁을 가열시키고 자원 공급국의 영향력을 더욱 키울 것이라는 예상에 근간을 두고 있다.
침공 직후부터 국제 유가는 계속 상승하고 있고, 밀과 알루미늄 등 각종 원자재 가격도 요동치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는 세계 최대 밀 수출국이다. 유럽의 곡창지대로 불리는 우크라이나는 밀, 옥수수의 주요 생산국이자 수출국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세계 밀 수출 시장의 3분의 1 가까이 차지한다.
세계 3대 산유국인 러시아는 다른 주요 자원도 보유·생산하고 있다.
러시아는 생산량 기준으로 니켈과 알루미늄 각각 3위, 석탄 6위의 국가다.
세계 1위 니켈 업체 노르니켈, 3위 알루미늄 업체 루살은 러시아 기업이다.
러시아는 전 세계 팔라듐 생산의 40%를 맡고 있다. 팔라듐은 반도체 생산 공정에서 촉매와 도금 재료로 사용된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이 러시아에 대한 전방위 경제·금융 제재에 나서고, 러시아는 보복 제재를 경고하면서 주요 원자재의 교역 등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불거진 국제 공급망 차질 문제가 악화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신냉전 구도가 펼쳐지는 가운데 러시아가 서방 세계를 상대로 자원 민족주의를 들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며 “희토류와 같은 희귀 물질은 특정 국가에서 생산되고 있어 단기적으로 대체재를 찾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자원부국인 호주의 경우 이번 사태의 직격탄을 피해갈 것으로 보이지만 한국을 비롯해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은 타격을 피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설상가상’…자원 무기화 중국의 ‘몽니’
더욱이 중국의 몽니는 설상가상의 상황이다.
중국은 자국 내 희토류 등 원자재 개발과 해외 시장 개척을 함께 추진하며 성과를 내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12월 자국 중서부에 있는 칭하이성 바옌카라 일대에서 리튬과 베릴륨, 텅스텐 등 희귀 자원 매장 지대를 발견했다.
중국은 이 지역에 리튬만 101만t가량 매장된 것으로 추정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6일 아르헨티나와 정상회담을 하며 아르헨티나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중국의 신경제 구상으로 중국, 중앙아시아, 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 참여를 끌어냈다.
이를 통해 중국은 아르헨티나 리튬 광산의 최대 투자자이자 구매자로서 국제 리튬 시장의 지배권을 강화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국제금융센터의 ‘글로벌 원자재 시장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두 개의 시장과 두 개의 자원’ 전략을 통해 국제 원자재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이 전략은 해외시장 진출로 얻은 자원을 먼저 쓴 뒤 국내 자원은 안보 등을 위해 보호하면서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국제 원자재 소비 시장에서 중국 비중은 절반을 넘고, 주요 30개 광물 중에서 66%의 최대 공급자는 중국이다.
반도체와 통신제품, 시멘트 등을 만드는 데 쓰이는 마그네슘, 게르마늄, 메탈실리콘 등의 경우 중국이 70~90% 공급한다.
한국은 중국 공급망 의존도가 19%로 주요국 평균 9%의 2배에 달하고, 에너지와 광물 자원의 중국 의존도는 70%를 넘는다.
즉,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국제 원자재 시장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더 커질 것이라는 점은 더 큰 우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아무튼 이미 미국은 스마트폰과 전기차 배터리 등 첨단산업에 필요한 희토류 공급 시장의 ‘큰 손’인 중국의 자원 무기화를 경계하며 희토류의 대중 의존도 줄이기에 나섰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최근 주요 광물 공급망 확보 관련 회의를 열고 자국 희토류 가공업체인 MP머티리얼즈에 미화 350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 회사는 정부 지원과 별개로 미화 7억 달러를 투입해 전기차 모터와 풍력 발전용 터빈 등에 쓰이는 영구 자석을 생산하기로 했다.
멕시코의 노골적인 자원 민족주의
“리튬은 멕시코와 국민의 것이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이달 2일(현지 시간) 리튬 개발을 위한 국영기업 설립 계획을 발표하면서 이같이 선언했다.
자국에 매장돼 있는 리튬의 개발 이익을 국내외 민간 기업에 넘겨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백색 황금’으로 불리는 리튬은 전기차와 스마트폰 배터리의 핵심 원료로,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국제 공급망 불안 속에 수요가 급증하면서 가격도 뛰고 있다. 볼리비아, 아르헨티나와 함께 남미 ‘리튬 삼각지대’ 가운데 하나로, 다음 달 새 정부 출범을 앞둔 칠레의 가브리엘 보리치 대통령 당선인은 리튬 개발을 위한 국영회사 설립을 구상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이 삼각지대 3국과 멕시코는 전 세계 리튬 매장량의 60%를 차지한다.
자국 자원을 정치·경제적으로 이용하며 영향력을 키우려는 자원 민족주의가 다시 짙어질 조짐이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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