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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3, 0, 2021

[세계뉴스] ‘칠레가 깨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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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gather during an anti-government protest in Santiago, Chile, Friday, Oct. 25, 2019. At least 19 people have died in the turmoil that has swept the South American nation. The unrest began as a protest over a 4-cent increase in subway fares and soon morphed into a larger movement over growing inequality in one of Latin America's wealthiest countries. (AP Photo/Rodrigo Abd)

지하철 요금의 4센트 인상을 계기로 피노체트 시대 이후 30여 년간 이어진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면서 산티아고를 시작으로 칠레 전역에서 대대적인 시위가 벌어졌다.

학생들이 무임승차 운동을 조직하자 정부가 경찰을 대거 동원했고, 국민들은 이에 맞서 대대적인 시위를 만들어냈다.

세바스티안 피녜라의 우파 정권이 신속하고도 강경하게 대응했다. 피녜라 대통령은 군사독재의 전성기를 상기시키며 1980년 헌법의 유산에 따라 국가비상사태와 야간통행 금지령을 발령했다.

칠레의 청년들, 특히 학생들이 국민 저항의 앞장에 섰다. 학생들은 지금 뿐만 아니라 사유화와 대학입학시험 전형료 인상 반대 투쟁이 있었던 2007년과 2011년에도 앞장섰다.

당시의 시위로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좌파 정당과 사회운동을 아우르는 선거연합인 “광역전선(Frente Amplio)”이 만들어졌다.

광역전선은 제헌 의회 구성과 수도 서비스와 연금 공공화를 내세워 2017년 하원에서 20석, 상원에서 1석을 확보하고, 칠레 제2의 도시인 발파라이소를 포함한 4개 도시의 시장 선거와 수십 개의 지방의원 선거에서 승리해 칠레의 정치 엘리트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2017년 대선에서 광역전선의 대선 후보 베이트리스 산체스는 제도정치권을 충격에 빠뜨리며 1차 투표에서 22%를 획득했다. 하지만 그는 불과 15만표가 모자라 결선 투표 진출에는 실패했다.

 

무너진 신자유주의 합의

칠레는 비교적 부유한 중남미 국가로 알려졌지만, 사회적으로 부자와 빈곤층의 격차가 매우 심하다. 칠레는 OECD에서 소득 불평등이 가장 심한 나라이며 여전히 연금제도부터 수도까지 각종 공공서비스가 사유화돼 있다. (이 또한 1980년 헌법과 국가비상사태 만큼이나 피노체트 독재 정권의 유산이다.)

광역전선 참가 정당인 민주혁명당의 에밀리아 리오스 사베드라는 “칠레는 지난 20년간 경제적으로 똑같은 정책을 추진해왔다. 구리광산과 벌목, 양식업 등에 의존하는 추출형(extractivist) 모델을 말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녀는 “이것은 정치체제가 대응할 수 없는 긴장감과 무력감을 만들어낸다. 한편으로는 능력이 없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무엇보다 정치와 경제 엘리트들이 보다 큰 국가의 이익을 생각하지 못한다”고 했다.

칠레의 민주화를 이끌었던 중도좌파 연합은 1980년대에 피노체트의 경제정책을 통해 칠레의 사회민주주의 전통을 와해시키려 했던 시카고 보이즈(시카고대 유학파)를 제어하지 못했다. 그 결과 점점 커지는 정치, 경제위기는 중도좌파의 지지율 하락을 낳았다.

그 결과 2017년 대선에서 우파의 억만장자인 세바스티안 피녜라가 당선됐다. (이 선거에서 중도좌파와 광역전선은 각각 후보를 냈다)

역시 광역전선 참여 정당인 사회통합(Convergencia Social)의 프란시스카 페라레스는 “피녜라 정권은 신다수파(중도좌파 연합)의 쇠퇴와 모순, 그리고 나은 미래를 약속했던 공약들 때문에 탄생했다”며 “하지만 현재 실업률이 증가하고 친족 등용이나 부패는 사라지지 않았고 정부의 개혁들은 친대기업적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했다.

피녜라의 엘리트 정권이 일반 서민이 날마다 겪어야 하는 경제적 어려움에 대해 일말의 동정심도 없다는 사실 역시 이번 소요사태의 배경 중 하나다.

병원의 대기시간이 너무 길다는 지적에 대해 보건부 차관 루이 카스티오는 “사람들이 병원에 일찍 와서 대기하는 동안 서로 친해지면 어떻겠냐”고 했고, 경제부 장관 후안 안드레스 폰테인은 “노동자들이 새벽에 일어나면 최근 인상된 출퇴근시간 할증을 피할 수 있지 않느냐”고 말해 국민의 분노를 샀다.

초기 시위에 대해 피녜라 정권은 “이것은 전쟁”이라고 반응했는데, 이 역시 국민의 분노를 부채질했을 뿐이다.

하지만 정부의 공격적인 언사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정부의 설명과는 반대로 칠레 거리의 분위기는 활기차고 낙관적이며 때로는 기쁨에 넘치기도 한다.

페라레스는 “칠레 국민은 희망에 차 있다. 거리로 나온 국민은 겁에 질려 있지 않다.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수 년 간 이어졌는데 드디어 칠레가 깨어났다”고 했다.

 

광역전선:새로운 좌파적 대안

칠레 국민은 연금제도와 수도 서비스를 국유화하고 주당 노동시간을 40시간으로 단축하며 공중보건기관에게 직접 보조금을 지급해 보건시스템을 고치며 공립교육을 강화하고 대중교통을 무료화하며 제헌 의회 수립을 통해 새로운 헌법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중앙 정치판에서 광역전선의 존재감이 아주 큰 것은 아니지만 이번 시위에서 나오는 요구사항들이 광역전선의 정책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광역전선이 시위의 성과를 받아 안을 수 있는 기회가 열린 셈이다.

선거연합으로서 광역전선에는 지난 수 십 년 동안 칠레 정치를 지배한 친족 등용과 부패에 대한 명백한 입장이 있다. 바로 시민을 정치과정에 참여시키는 것이다. (이는 광역전선의 뿌리가 칠레의 사회적 투쟁의 긴 역사에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페라레스는 “광역전선은 민중의 지난 투쟁과 독재에 맞선 저항에서 태어난 최근의 대안”이라며 “우리는 우리가 모든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이번 시위가 우리보다 앞서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했다.

시위가 점점 거세지자 피녜라 정부는 정치적인 대응을 할 수밖에 없었다.

피녜라는 최근 새로운 “사회 아젠다”를 발표해 연금제도의 개혁과 최저임금 보장, 그리고 부유세 등을 약속했다. 그러나 시위대와 광역전선은 군의 억압이 끝나지 않는 한 이런 개혁의 시작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페라레스는 “칠레의 민주주의를 복구하는 것이 이번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첫걸음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시위대를 달래려는 피녜라의 시도에 대해 “약속과 연설 만으로는 사람들의 저항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국민의 명령은 이미 나왔고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정부가 민중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라고 못박았다.

광역전선은 의회와 거리에 모두 발을 내리고 칠레의 신자유주의 모델을 무너뜨리는 데 앞장설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국회의원들이 시위에 대응하며 자신의 월급을 스스로 삭감할 때 사회통합의 디에고 이바네즈는 “이는 국민의 행동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 10월 25일, 광역전선은 1980년 헌법을 대체하기 위해 제헌 의회를 소집할 것인지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하자는 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광역전선은 제도 정치 참여만으로 성과를 얻어내려는 모델과는 거리가 멀다. 페라레스는 “광역전선은 헌법상의 예외 상태가 해제되고 군의 투입이 중단되지 않는 한 정부와 어떤 대화도 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번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의미있는 대화”를 하자는 피녜라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밝혔다.

페라레스의 말대로 시위대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광역전선이 취하는 입장은 “우리가 가진 모든 수단을 활용하는 것”이다.

리오스는 “광역전선의 첫 번째 과제는 살바도르 아옌데의 인민전선 정부의 상징이었던 ‘희망’을 되찾는 것이다. 아옌데 정권의 영광의 시기에 살았던 사람들은 엄청난 희망과 변화가 가능하다는 믿음을 경험했다”며 “그런 정신이 없으면 우리는 거의 아무것도 이룰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출처: 민중의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