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과 변화 (acceptance and change)”는 서로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성장하고 변화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수용이라고 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상담소를 찾는 사람들이 처음 상담자를 만났을 때 상담자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용납하고 이해해 주는 것을 통해 사람들은 상담자를 신뢰하게 되고 따르게 됩니다. 충분히 신뢰하는 관계가 형성되면 상담을 받으러 온 내담자는 상담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상담의 반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미 내담자는 마음을 열고 상담자의 안내에 충실히 따를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때부터 치료를 위한 변화가 촉진됩니다.
이것은 비단 상담에만 적용되는 원리가 아닙니다. 성경에서도 그 원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도망을 갔을 때 예수님은 그를 탓하거나 왜 그랬니? 라고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그를 다정하게 부르시고 먹이시고 수용하셨습니다. 동일한 사랑으로 다가가셨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수용을 경험한 베드로의 삶은 변화를 경험합니다. 하나님의 깊은 수용과 사랑을 경험한 자들은 그분을 따르고 그 분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 노력하게 됩니다. 그럴 때 자연스러운 변화는 찾아오게 됩니다.
산드라 윌슨이라는 분이 쓴 “아바 아버지”라는 책을 보면 늘 사람들에 대한 거절감과 상처로 인해 고립되고 외로웠었는데 그런 감정이 결혼한 이후에도 지속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깊은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과 수용을 경험한 후 사람들 앞에 있어도 더 이상 이방인과 같이 느끼는 깊은 버려진 것 같은 감정들이 느껴지지 않게 되고 지금은 자유함을 얻게 되었다라고 고백합니다.
수용과 변화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뿐 아니라 부모님과 자녀와의 관계에서도 나타납니다. 부모님의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을 대할 때 많은 부모님들은 그 아이가 문제라고 여기며 문제행동에만 초점을 맞추어서 변화를 시키려고 무던히 애를 씁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그런 일들이 실패하는 것은 충분한 사랑과 수용을 먼저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느낄 수 있도록 해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감정적으로 불안하고 돌발 행동을 많이 보이는 십대 아이들에게 잔소리는 역효과를 가져옵니다. 그 아이의 변화를 원한다면 먼저는 그 아이를 있는 모습 그대로 용납하고 사랑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진정으로 사랑을 받은 아이는 그것에 보답하는 변화가 따라오게 됩니다.
필자의 딸이 사춘기가 되어서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고 예전처럼 공부를 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을 때 무의식 중에 아이를 다그치고 (물론, 아이가 잘 되기를 원하는 부모의 마음을 가지고 다가갔지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라고 잔소리를 늘어 놓았습니다. 아무리 가르쳐도 아이의 행동이 변화를 보이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자신의 삶에서 정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었는데 그것에 대해서 수용하고 잘 들어주고 격려를 해주었더니 아이의 삶의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스스로가 알아서 공부를 하려고 하고 부모님께도 더 많은 사랑을 표현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에도 ‘수용과 변화’라는 원리를 적용되어 있었습니다.
부부 치료에도 “수용과 변화” 라는 기법을 전문적으로 사용하시는 니일 제이콥슨과 앤드류 크리스텐슨이 있습니다. 그들의 책 “부부치료에서의 수용과 변화”라는 책에 의하면 부부가 극심한 갈등 상황 가운데 있을 때는 의사소통 방법이나 행동 교정의 기법으로 부부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수용”의 방법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수용을 통해서 상대방도 나처럼 고통 가운데 있다 라고 하는 것을 이해하고 극단적으로 반응한 내 자신을 살펴볼 때 다시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상담사들은 수용을 촉진하기 위한 특별한 기술들을 사용해서 부부가 서로를 수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그것의 한 가지 방법은 부부가 자신을 표현할 때 부드러운 표현을 하도록 이끄는 것입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강한 표현은 상대방과 대면하여 보다 강하고 우월적인 위치에 선 듯한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부드러운 표현을 사용하면 자신이 상처받기 쉬운 존재라는 것을 상대방에게 보여줄 수 있다고 합니다. 그것을 위해 “분노”라는 감정은 “상처”로 표현하고, “분개”는 “실망”으로 그리고 “공격과 주장”은 “두려움과 불안”으로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합니다. 대부분 부부들의 경우 자기를 표현하도록 하면 강한 표현들이 나오는데 그렇게 되면 우월한 입장에서 비난을 하는 것처럼 느끼게 될 경우가 많게 됩니다. 그것은 서로의 말을 들어주고 수용하기가 쉽지 않게 만들기 때문에 부드러운 표현으로 순화되어 표현할 수 있을 때 수용이 이루어지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변화와 성장을 원합니다. 특히, 자신이 변화되기를 바라기도 하지만 자신의 가까이 있는 누군가가 변화하고 성장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내가 누군가를 변화시킬 수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변화시키려 하기보다는 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진정한 수용과 이해를 먼저 시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신과 타인을 수용하여 자신과 타인의 변화와 성장을 매 순간 경험하시는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God loves you and bless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