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성품입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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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성품입니다 (1)

누군가가 저에게 “성품은 요람에서 시작하여 무덤까지 가는 사역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아니요. 그 이상입니다.”라
고 답할 것입니다.

덤을 넘어 지존자의 그늘 아래 거할 때 유일한 교제의 통로가 바로 나의 성품입니다. 성경은 “지존자의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시 91:1)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날마다 우리의 성품을 연마하여 지존자와 은밀한 교제를 누리도록 애쓰고 힘써야 하는 영역이 바로 우리의 성품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를 그런 존재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좋은 성품은 창조자 되신 하나님을 따라 가는 삶

성품이 무엇입니까? 저는 성품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성품이란 ‘우리의 생각, 감정, 행동들을 총체적으로 표현하는 모든 것’이라고 말입니다. 좋은 성품이란 우리의 생각, 감정, 행동의 영역에서 창조자 되신 그분을 닮아 따라 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은 시대를 따라 변해도 온 세상을 만드신 창조자 그분은 변함없이 가장 좋은 영원한 ‘선’이시기 때문입니다. 창조자는 우리가 생각, 감정, 행동을 자율적으로 선택하여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지으셨습니다.

아주 수준 높은 창작물로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창성을 가득히 부어 아름답게 지으셨습니다. 그분이 만드신 모든 것들 중 우리는 최고의 걸작품입니다. 우리 안에 그분의 생각, 감정, 행동을 그대로 닮아 온 땅을 다스리며 충만하게 살아가라고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분을 닮아 만들어진 우리의 성품이 세상의 그릇된 영향을 받아 세상을 지배하는 권세를 가진 사람들의 흉내를 내며 사는 비극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사랑하는 사람끼리 성격이 안 맞아 못살겠다고 소리칩니다. 서로 미워하고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가 막혀 담을 만들고 삽니다. 고독한 관계들 속에서 고립된 채 살게 됩니다.

그 결과로 현대인들은 더 이상 상처를 주고받지 않을 대안으로 소극적인 관계 맺기를 미덕으로 내걸고 삽니다. 서로에게 적게 느끼고 적게 관여하고 적게 경험하며 살아가려는 소극적인 대인관계를 찬양하며 삽니다. 그 결과 말할 수 없는 외로움과 내면의 고독들을 해결할 수 없어 발버둥치며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가는 연습을 시작할 때

이제 우리는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 감정, 행동의 영역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조심스럽게 살펴보면서 그분을 닮아가는 연습을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 감정 그리고 행동이 그분을 닮아 가는 연습을 습관적으로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품 교육입니다.

그래서 이 성품교육은 어린아이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인생을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해야 할 과업입니다. 이 과업이 성취될 때 진정한 행복과 성공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가장 귀한 가치로 자신을 개발하고 실현하려고 합니다. 자아실현의 욕구가 바로 가장 귀한 현대인들의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사 43:4)라는 우리 주님의 가치를 나의 가치관으로 삼고 기뻐해야 합니다. 나의 생각, 감정, 행동의 영역인 나의 성품이 주님을 사랑하고 표현하는 통로가 될 때 나는 보배롭고 존귀한 존재로 회복됩니다. 주님의 가치가 나의 가치가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참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좋은 성품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좋은나무 성품학교 대표 이영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