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명의 아이들 양육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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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명의 자녀와 함께 살기 위해서는 규칙이 필요합니다. 뒤죽박죽 헝크러진 실타래를 풀어내는 것이 쉽지 않듯 무너진 질서를 다시 세우는 것도 쉽지 않고 없던 규칙을 새롭게 만들어 지켜나가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헝크러진 실타래는 풀어야 사용이 가능하고 질서를 세워나가야 건강한 체제를 유지해 나갈 수 있고 또 좋은 규칙들이 있을 때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합니다. 그것은 가정에서도 적용됩니다.

친구 한 명이 말하길 식구 수가 많은 집이 시끄럽다고 합니다. 그 친구의 말에 쉽게 수긍하는 것은 우리 집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세 돌이 다되어 가는 막내 아이까지 목소리가 어찌나 큰 지 가끔은 놀랠 때가 있습니다. 마치 작은 자신의 존재를 목소리로나마 알리려는 듯 외치는 아이의 함성을 들으며 목소리가 작아야 고상한 사람이라는 나의 철학은 수정된 지 오래입니다. 아침부터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전쟁통입니다. 춥다고 교복을 갈아입지 않고 거실의 온수 매트 위에 한정 없이 누워 있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등교 시간 이십 분 전부터 시동을 미리 켜놓고 차에서 기다리며 늦었다고 불평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엄마가 묶어 준 머리가 맘에 안 든다며 두 번, 세 번 다시 머리를 묶어 달라는 아이도 있고 물병을 꼭 챙겨가는 아이, 학교 가기 직전에 배가 아프다며 화장실을 달려가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리고 늘 마지막에 부모가 나와야 같이 나오는 아이, 심지어 하필 식사 때만 되면 용변을 끝냈다고 화장실에서 엄마, 아빠를 부르는 아이가 있습니다. 같은 배 속에서 나왔지만 어찌나 모두가 다른 지요. 살아있는 현장 학습의 장소입니다.

이렇게 다르고 다양한 아이들과 함께 살면서 조화를 이루고 하나가 되며 질서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 때로는 부모인 나에게도 참 어렵고 곤란하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십대가 되면서 더 이상 말에서 져 주지 않는 아이의 말을 참고 또 참고 공감하고 들어주는 것도 쉽지 않고 자주 안아 달라고 요구하는 아이를 외면하는 것도 그렇다고 계속 안아주는 것도 50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처지에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이며 삶을 풍성하게 하는 하나님의 유업이기에 그들을 양육하고 키우는 일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일이며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일입니다. 특히, 가정 안에서 아이들에게 단호하고 건강하고 균형 잡힌 훈련을 해 나가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것은 아이들에게 한계를 가르쳐서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줍니다. 그것을 위해 부모님이 알아야 할 두 가지가 있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자녀를 명품 인생으로 키우는 24가지 양육 포인트” 라는 책을 쓴 데이비드 클락은 아이들은 반항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반항을 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독립적으로 자라날 수 없다고 말하면서 큰 문제가 아닌 사소한 것에서는 반항을 허용해야 한다고 합니다. 필자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를 합니다. 예를 들면, 사소한 것, 머리 모양 같은 것, 먹는 것, 외모나 옷차림 같은 것에서는 약간의 반항을 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거기에 꼭 어떤 방식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부모님들은 십대 아이가 화장을 좀 한다고 해서 그것을 문제아로 이어지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작은 문제에서 아이들을 꺾으면 아이들은 다른 중요한 부분, 또는 아주 위험한 부분에서 반항할 수 있습니다. 약물이나 성 문제, 나쁜 친구가 그런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인생을 망칠 수 있는 부분이기에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정말로 적극적으로 싸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부모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사소한 잔소리를 늘어 놓는 것은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보다는 큰 문제로 나아가게 만들 수 있습니다. 작은 반항은 허용하십시요.

다음으로 아이들은 어른이 맘대로 다룰 수 있는 대상이 아닌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많은 부모들이 배우자는 맘대로 못하면서 자녀들은 자신의 맘대로 좌지 우지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녀들도 내 마음대로 움직이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단지 부모는 자녀들이 선택한 행동에 대해서 상과 벌을 적절하게 줌으로 스스로 행동을 통제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적당한 행동 기준이나 규칙을 세우고 아이의 행동에 따라 합리적인 상과 보상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상을 선택하든지. 벌을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

어제 저녁, 아이들과 가족의 시간을 가지면서 서로의 삶을 나누고 난 다음 지각하는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아이들의 의견이 9시가 되면 벨을 울려서 잠잘 준비를 알리고 9시 30 분이 되면 모두가 침대에 눕도록 또 한 벌의 벨을 울린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그것을 지키지 않을 경우 다음 날 도시락에 디저트가 빠지도록 정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어제는 첫 날이어서 모두가 계획을 잘 지켜 주었는데 중요한 것은 일관성입니다. 하루만 지키고 지키지 않으면 아이들은 규칙은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 여기며 훈련 되어 지지 않을 것입니다. 필자의 가정에서 일어나는 흔한 일은 계획을 세웠을 때 잘 지키는 경우 상은 잘 주는 반면 지키지 않는 경우 벌을 잘 주지 않는 일들이 종종 발생합니다. 아마도 상은 아이들이 자신의 몫이니까 챙기는 반면 벌은 부모가 바쁘거나 마음이 약해져서 일어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시적인 효과는 있지만 장기적인 훈련으로 이어지는 것은 쉽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말한다. 잘못한 경우에는 응당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자녀를 잘 훈련함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호주기독교대학 김훈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