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감의 원인과 해석
오랫동안 우울한 감정을 더 이상 많이 느끼지 않았다. 젊었을 때는 생리 증후군이 있어서 생리전만 되면 기분이 우울하고 작은 일에 짜증이 쉽게 난 적이 있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성숙해져 가고 감정을 다루는 법을 배우고 나를 이해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우울한 감정이 거의 없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하루를 감사하면서 살아오던 날이었는데 어제 아침에는 일어나는 데 왠지 많이 우울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지만 마음을 다잡고 해야 할 일이 많은 월요일이기에 아이들 도시락을 싸고 사무실에 출근을 해서 일을 하고 모임에 참석을 하고 공원을 산책하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우울감의 원인이 무엇인지 찾기가 쉽지가 않았다.
오늘 아침에도 어제의 연속인 듯 침대에서 나오는데 눈이 잘 떠지지 않고 온 몸이 피곤한 듯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서 마음으로 "오늘 아이들 도시락을 그냥 돈을 주고 사 먹게 할까?" 라는 생각까지 하면서 일어나다가 "그래도 이러면 엄마가 안돼지!" 라는 생각으로 나를 다독여 가며 부엌으로 갔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아들이 부엌에 들어오면서 "엄마, 나 오늘 왜 이렇게 피곤하지? 너무 너무 일어나는 게 힘드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도 비슷한 증상이 있다고 말하자 아마도 알러지 때문일 수 있다고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나서 조금 있다 일어난 딸도 "엄마, 어제, 오늘 진짜 피곤하고 힘들다" 라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사실, 필자도 지난 주부터 꽃가루 알러지(hay fever)로 인해 계속 재채기를 하고 콧물을 흘리고 있었다. "여기에서 내려진 결론은 극심한 알러지가 몸을 피곤하게 만들어서 온 가족이 신체적으로 지치고 지금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입증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침에 사무실에 가니 사무실 직원도 출근을 안 했는데 새벽 한 시에 남겨진 메시지에 의하면 알러지가 심해서 출근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영국의 브리스톨 의과 대학 연구팀은 우울증, 불안증 같은 정신 건강 장애와 알레르기, 꽃가루 알레르기 사이의 유전자 인과관계를 조사했다고 한다. 그 연구 결과에 의하면 알레르기와 우울증은 강력한 상관 관계가 있고 꽃 가루 알레르기와도 관련이 있다고 한다. 실제로 최근 경험한 꽃 가루 알러지와 우울한 감정이 연관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일을 계기로 어제부터 일어난 사건을 재조명하면서 귀인(사건의 원인을 어디에 두느냐)과 해석(사건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우울함의 감정에 대해서 나름대로 귀인을 찾고 해석을 하게 되는데 필자의 경우 우울했던 감정에 대해서 먼저는 내적인 것에서 찾고 답을 찾으려고 애를 썼었다. 최근에 해결되지 않는 개인적 문제로 인해 지속적인 스트레스가 있었기에 스트레스와 우울질의 기질적 소인이 우울감을 느끼게 했다고만 생각을 했다. 그래서 최근에 일어난 스트레스를 일으킨 사건들에 원인을 찾고 이런 것들을 잘 극복해내지 못함으로 우울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다고 해석을 하자 우울감이 깊어지는 듯했다. 그런데, 내적인 소인에 무게를 많이 싣지 않고 꽃가루라고 하는 외적인 환경적 소인이 현재로는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으면서 어제와는 사뭇 다르게 마음이 가벼워졌고 내 자신을 비난하고 우울의 감정에 더 깊이 빠져들고 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렇게 사람은 원인을 어디에 두고 또 어떤 해석을 하느냐에 따라서 감정을 조절할 수 있게 되기도 하고 반대로 그 감정을 누군가를 해치는 것에 사용하기도 하고 그 감정에 깊이 빠져서 감정적 어려움에 처하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떻게 해석을 하고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중요하다.
우울한 감정적 소인을 연약한 자신의 기질로만 본다면 자신을 탓하여 자신의 연약함을 비난하는 자기 증오를 낳게 된다. 또는 낙심을 하고 우울함에 처함 자신을 불쌍하게 연민으로 바라보면서 우울함에 더 깊이 빠져 들 수도 있다. 세상의 모든 짐을 짊어진 불우한 예술가처럼 우울한 음악을 듣고 침대에 오래 머물러 있으며 창문 밖을 멍하게 바라보며 우울의 늪에 빠져드는 것이다.
또한 우울한 감정의 원인을 나의 감정을 몰라주고 위로해 주지 않는 가족 또는 배우자에게 둘 때는 어떻게 될까? 자신을 비난하는 화살을 타인에게 돌리면서 타인에 대한 적개심 그리고 원망을 마음에 쌓아 놓고 그들의 무관심과 배려 없음을 탓하고 그들 때문에 나의 우울한 감정이 증폭이 되고 지속되는 요인이라고 믿으며 나는 희생자, 그들은 가해자라고 하는 프레임을 가지게 된다.
그러면서 변화되지 않는 프레임속에 나는 갇혀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의 덫에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우울의 원인을 사회적 제도나 불합리한 세상과 불특정 다수인 타인들에게 돌리면 어떻게 될까? 그런 경우 세상을 향해 나갈 수 있는 용기가 없어서 히꼬모리처럼 방안에만 쳐 박혀서 세상을 두려움으로 또는 증오의 대상으로 대하게 될 수 있다. 그 억압된 분노가 때로는 자신을 돌보는 가족들에게 때로는 자신을 모르는 세상의 특정 다수에게 칼을 휘두르거나 악행을 저지르는 모습이 될 때 그들은 이제 가해자가 되어 세상에게 원망을 쏟아내는 반 사회적인 사람이 되기도 한다. 최근 이런 사건들이 수시로 생겨나는 일을 보게 되는데 어제도 호주국립대학 운동장에서 무고한 두 여학생이 누군가의 소행으로 칼에 찔려 중상을 겪는 사건이 일어났다.
대인관계 심리 치료 (interpersonal psychotherapy)에서는 우울증의 원인을 다른 것에 두지 않고 우울증이라고 하는 질환에 둔다. 그래서 누군가를 원망하기 보다 나타나는 증상들의 모든 것이 우울증이라고 하는 질환이 가지고 있는 증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해서 환자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행사할 수 있게 한다. 많은 경우 우울증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질병이기에 우울한 사람이 아무것도 못하고 있으면 그것을 질병으로 받아들이기 보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게을러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이기적이어서', '야망이 없어서' 라고 잘못된 원인으로 해석하여 우울증 환자를 부정적 편견을 가지고 이해할 때 관계적 측면이 더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우울증의 증상을 심화 시키게 한다.
필자가 앞부분에서 최근에 경험한 우울의 원인을 알러지로 이해하고 나에게만 있는 현상이 아니라 모두에게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했을 때 우울한 감정을 잘 극복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울한 감정이 다가올 때 그것의 원인을 어디에다 두는 경향이 있는 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 지를 생각해보면 감정을 다스리는데 도움이 될 수 있게 된다. 각자가 그것이 다 다른 양상일 수 있기에 똑같은 답을 생각할 수는 없으나 자신에게 해가 되는 방식 (무조건 내 탓, 또는 남 탓)으로 해석하기 보다 또는 부정적으로 해석(나는 어리석어, 또는 나는 피해자야 )하기 보다는 우울한 감정을 다루는데 도움이 될 만한 방식 그리고 현실에 기반한 생각 (지금 꽃가루가 워낙 심해서 우울한 감정을 갖게 하는 구나)으로 해석함으로 우울한 감정을 극복해 보자.
서미진 박사 호주기독교대학 부학장, 호주한인...
대인관계의 어려움은 왜 생기는가?
어린 시절 필자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은 모두 권위자들이었다. 부모님으로 부터 학교 선생님, 그리고 교회 사역자들이었는데 그들은 대부분 나에게 관심이 있고 나에 대한 삶의 기대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권위자와의 관계는 아직도 필자에게는 쉽지 않다. 그런데 그것은 필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많은 한국인들에게 해당되는 것 같다. 지금도 교회에서 점심을 먹을 때 보면 장로님이나 목사님들이 있는 테이블에는 성도들이 쉽게 다가가지 않는 것을 보게 된다. 권위자들에 대한 불편함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권위자들에 대한 불편감이 정도가 심해지면 그것은 사람에 대한 공포증으로 발전되어질 수도 있다. 권위자들이 또는 타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자꾸 예민해지고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 왠지 긴장이 되고 편안하게 되질 않는 것이다. 이렇게 권위자이든 특정 어떤 사람이든 사람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사회적 불편감을 사회 공포증이라고 한다. 사회 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대인 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늘 긴장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운 사람이다. 이런 사회 공포증은 불안의 일종인데 사람들과의 관계를 자꾸 회피하게 만들고 긴장하게 하다 보니 사회적인 고립감으로 또는 사람들과 점점 관계하기가 어려운 사람이 되게 하기도 한다.
이렇게 경험하는 대인 관계의 어려움의 이유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대인 관계에 어려움을 가지는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생리적인 이유와 심리적인 이유와 사회적인 원인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생리적인 이유는 유전적 소인으로서 스트레스에 아주 취약한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의 반응이나 표정에도 예민한 것이 사람에 대해서 부정적인 해석을 하게 되면 대인 관계를 피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사람들과 자주 만나지 않으면 대인 관계 기술이 발달하지 못하게 되는 부분이 생긴다. 또한 기질적으로도 내성적인 사람은 외향적인 사람에 비해서 관계의 폭이 좁고 타인에게 관심이 적다 보니 대인 관계의 기술을 잘 배우지 못하는 부분도 있을 수 있고 또 기질적으로 예민한 기질이라면 모든 부분에서 늘 조심하다 보니 사람과의 관계도 조심하게 되고 조금이라도 위험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피하게 되는 데 관계에서도 조심스럽게만 접근하다 보니 친밀한 관계를 잘 경험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 이렇게 생리적인 이유가 사람들과의 관계에 영향을 주는 부분이 있다.
한 여성분이 생리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생리 직전에는 아무것도 하기 싫고 사람도 아무도 만나기 싫고 작은 일에도 짜증만 많이 난다고 한다. 이 분의 경우 생리적인 이유가 대인 관계에 손상을 줄 수도 있고 관계를 피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는 경우다. 이런 어려움이 주위 사람들과 잘 소통이 되어서 이해를 받을 경우에 관계에 어려움이 생기지 않을 수 있으나 증상이 나타날 때 짜증이나 화로 주위에 있는 사람에게 폭발적으로 상처를 주게 된다면 그것은 관계를 해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심리적인 이유를 들 수 있다. 어린 시절의 경험이 따뜻하지 않고 무섭고 아픈 경험이라고 할 때 사람들에 대해서 신뢰할 수 없게 되고 그것은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고 관계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은 어릴 때 알코올 중독자 가정에서 자라면서 술을 안 마실 때는 너무나 좋은 아버지가 술만 마시면 악인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을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늘 조용한 사람으로 사람들에게 눈에 띄지 않고 많은 사람과 관계를 하지 않는 있는 듯 없는 듯 한 사람으로 독립적으로 살아왔다고 한다. 이렇게 어린 시절의 경험이 대인 관계에 영향을 준다.
또한 심리적인 이유로 애착의 이슈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태어나자 마자 주 양육자와의 관계에서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한 경우에 관계에서 지나치게 집착하는 사람이 되거나 관계에 무관심한 사람이 되거나 관계하는 것이 일관성이 없이 늘 힘든 사람이 될 수 있다. 사람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따뜻한 시각과 안전감을 경험하지 못하고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해서도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관계를 하는 것이 쉽지 않은 법이다.
마지막으로 관계를 잘 하지 못하는 요인으로 현재의 사회적 관계에서의 갈등이나 사회적 기술의 부족일 수 있다.
먼저, 현재의 사회적 관계의 갈등을 살펴보자. 예를 들어, 나와 맞지 않은 남편을 만나서 늘 갈등 상황을 경험하고 있을 때 가장 중요한 관계에서 갈등을 경험하는 것이 그 외의 관계에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남편과 싸움을 한 후 그 스트레스를 자녀에게 풀면서 자녀를 학대하는 경우다. 이렇게 현재 어려운 갈등 관계가 또 다른 관계의 갈등을 가져오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현재의 갈등 뿐 아니라 과거의 해소되지 않은 갈등은 현재의 갈등을 더 증가시키는 역할을 또 하기도 한다. 반대로 지금의 갈등은 또 미래의 관계의 어려움으로 다가오게 된다. 많은 이혼자들이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때 자신감을 잃어버리는 것도 이에 해당하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 현재에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건강하게 갈등을 극복하는 갈등해소 기술과 효과적의사소통 기술이 있어야 하는 데 그렇지 못할 경우 더 많은 갈등을 경험하게 된다.
이런 사회적 기술이 부족한 사람은 자칫 잘못하면 오해를 받을 여지가 있어서 공동체에서 왕따가 되기도 하는 상처의 경험도 갖게 될 수 있는데 그것이 또 대인 관계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사회적 기술이란 나의 감정과 생각을 상대에게 잘 전달 할 수 있고 상대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고 거절이 필요할 때 '아니요'를 건강하게 표현할 수 있는 기술일 뿐 아니라 도움을 잘 주고 받고 소통을 잘 할 수 있는 기술을 말한다. 선천적으로 이런 기술을 잘 타고 태어난 사람을 정서지능이 높은 사람이라고 볼 수 있지만 사회적 기술은 선천적이라 기보다는 환경을 통해서 훈련되어질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므로 나는 대인 관계 기술이 없어 라고 하면서 쉽게 관계를 포기하지 말고 배울 수 있는 기술이 있다면 배워서 대인 관계의 폭을 넓히고 또 지속시켜 나가는 것이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이다.
대인관계가 쉬운 것은 아니지만 누구나 필요한 것이기에 노력하고 변화를 시도하면 발전될 수 있는 기술이다. 그러므로 나의 안전한 곳을 벗어나 더 나은 관계를 위해 회피와 도망을 선택하기 보다는 대인 관계 기술을 배우는 용기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더 나은 관계를 맺어가자.
서미진 박사 호주기독교대학 부학장, 호주한인 생명의 전화 원장
관계중심 심리치료
언젠가 예수 전도단이라는 선교 단체에서 운영되는 상담학교의 교장 선생님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관계'다 라고 말했던 것이 생각이 납니다. 그 분의 말은 관계가 인생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지를 잘 설명해 주는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현대 사회의 감기라고 불리는 우울증은 누구나에게 걸릴 수 있지만 그 우울증의 원인은 다양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우울증의 증상을 가지신 분들은 사회적으로 고립되어져 있고 또는 다양한 상실을 경험한 경우가 많아서 우울증의 원인을 관계적인 문제로 보고 우울증을 고쳐주려고 하는 상담 기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관계 중심 심리치료 (interpersonal psychotherapy)라고 부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울증을 관계의 문제를 해결함으로 고쳐준다는 것입니다.
어떤 한 여성이 우울증이 있습니다. 관계가 깨어진 가정의 9남매 중에서 한 아이로 태어났던 그녀는 가족들과의 관계가 별로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혼을 통해 남편과의 관계에서 가치감과 행복감을 느끼고 싶었지만 점점 더 남편은 자신을 단지 성적 욕구를 채우는 대상으로 생각하고 또 남편의 일을 도와주는 피고용으로만 관심을 갖는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이 여성분은 태어난 가정에서 친밀한 관계를 만들지 못했고 또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할 뿐 아니라 지금도 사회적 관계가 약하고 부족한 것이 나타났습니다. 무엇보다도 결혼 전 보다 많이 바빠진 남편과의 관계에서 존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점점 더 우울감을 경험하게 했고 그것이 나중에는 우울증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관계의 어려움을 통해서 감정적으로 우울감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에게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관계의 어려움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대표적으로는 상실, 역할 논쟁, 역할 변화, 관계 기술 부족 등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상실을 많이 경험합니다. 특히, 삶의 중요한 사람의 죽음이나 큰 사고로 인한 상실은 많은 사람들을 우울하게 하고 좌절하게 만듭니다.
배우자의 상실이나 부모의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이 경험하는 애도가 장기화될 때 우울증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장애인의 부모님은 수십년 동안 자녀를 돌보아 주었는데 질병에 걸려서 그만 이제 더 이상은 자녀들 돌 봐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장애인인 자녀는 너무나 슬퍼하며 깊은 우울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삶에서 가장 큰 의지가 되던 한 사람이 자신의 삶에서 떠나갈 때 그 중요한 관계의 상실로 인한 슬픔은 우울증을 가져다 줄 만큼 고통스러운 것일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지연된 애도 과정이 촉진이 될 수 있도록 상실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고 사별 이전과 사별의 과정 그리고 사별의 결과를 이야기하도록 하고 관련된 감정을 충분히 탐색하도록 격려하는 것을 통해서 잃어버린 사회적 지지자의 역할을 해줌으로 그 슬픔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음으로 역할 논쟁의 경우를 봅시다. 가까운 대상, 배우자, 애인, 아이들,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등과의 관계에서 사람들은 각각 다른 기대를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기대들이 서로 충돌하고 서로 불일치하기 때문에 논쟁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한 남성은 엄마처럼 자신을 희생적으로 잘 돌보아 주는 여성을 원해서 결혼을 했는데 아내는 고생과 상처로 젊은 시절을 보냈었기에 자신을 구원해줄 남편을 원해서 결혼을 했을 경우 서로의 기대가 상충하여서 관계에서 어려움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러한 갈등이 호전될 가능성이 없이 정체되거나 반복이 되면 우울해지는 것입니다. 이런 논쟁이 있는 사람들의 관계적 특성을 보면 더 이상 좋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좌절하는 마음과 건강하지 못한 의사소통 양식 그리고 조정이 되지 않는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고 호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적응적이지 못한 의사소통 양식을 건강하게 바꾸거나 대인 관계의 기대를 재평가하고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역할의 수정을 위한 역할 협상과 행동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역할 변화를 살펴보면 이전에 내가 역할을 하던 것이 환경의 변화로 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 또는 자녀가 성장하면서 생기는 역할의 변화 같은 것이 해당된다. 예를 들면 아이들 양육에 올인했던 엄마가 아이가 성장하면서 경험하는 빈 둥지 증후군 같은 것이 있을 수 있고 실직과 같은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일을 하지 못할 때 경험하게 되는 우울과 같은 것입니다.
한 남성분은 너무나 열심히 회사 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월급이 많이 오르지 않을뿐더러 동료에 비해서 승진이 늦어지는 것이 몇 번 반복이 되자 우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은 왜 우울한 지 잘 알지 못하다가 잠도 못 자게 되고 회사에서 실적도 조금씩 낮아지게 되면서 자신의 문제를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회사에서의 역할이 나이가 들면서 중요해지지 않게 여겨지면서 우울해진 것이었습니다.
이런 분의 경우는 역할의 변화로 인해 생긴 느낌을 탐색하고 새롭게 변화된 역할에 대한 가능성을 탐색하게 하면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적절한 감정을 충분히 표현하게 할 뿐 아니라 사회적 지지망과 새로운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필요한 기술을 습득하도록 격려하는 것도 필요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관계 기술 부족입니다. 관계기술이 부족한 사람은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에 늘 실패를 경험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외로울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관계의 어려움에서 생긴 사회적 고립이나 불만족스러운 감정을 표현하게 하면서 실패한 중요한 대인 관계들을 검토하고 그 관계를 분석하여 반복되었던 대인 관계 양상을 탐색하여 대인 관계의 변화를 시도하도록 돕는 것이 필요합니다.
관계의 어려움으로 인한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나의 관계의 어려움은 어떤 양상을 가지고 있는 지를 살펴보고 나에게 맞는 해결책을 찾아봄으로 건강한 관계 뿐 아니라 우울한 감정을 이겨내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서미진 박사 호주기독교대학 부학장, 호주한인 생명의 전화 원장
찬장의 가치
거실에 있던 브라운 색의 찬장은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오면서 사게 되었다. 처음 선교단체의 훈련생으로 또 유학생으로 호주에서 삶이 시작되었던 우리 가족에게는 값비싼 그릇들이...
자녀의 불안 증세
한 엄마가 자신의 친구 아이가 초등학교를 들어간 후에 눈 깜짝임 같은 틱 증세를 보인다고 하는데 병원에서는 아이가 발달하는 과정 중에 그럴 수 있다고 하면서 약을 처방해서 그 증세를 없애도록 도와주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 엄마는 약으로만 그런 증세가 치료가 될 수 있을까요? 라고 하면서 질문을 한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신의 아이도 약간의 불안 증세가 있는데 그것을 정상적인 발달로 보고 그대로 두어야 하는지 아니면 중재를 해서 도움을 주어야 하는 지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눈치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의 불안과 공포를 경험한다. 그래서 발달적 관점에서는 가벼운 공포와 불안은 정상적인 인간 발달의 일부다. 아마도 위의 경우 의사선생님께서 설명한 것이 그 경우일 것이다. 예민한 엄마들은 아이의 일시적인 불안의 증상, 예를 들면, 떨리는 목소리 '던가 또는 '손톱을 물어 뜯는다'던 가 또는 '경직된 자세 '와 같은 증상이 있을 때 그것을 너무 심각한 문제로 생각하여 아이로 하여금 불안감을 오히려 더 느끼게 하는 경우가 있는 가 하면 둔한 엄마의 경우 '누구나 아이들이 그렇다'라고 방치를 하여서 아이의 문제 행동이 더 심해지고 나중에는 다양한 틱 증상과 더 심한 증상을 가진 아이로 발전하게 되기도 한다.
정상적인 발달 과정에서 경험하는 대표적인 아동의 공포로는 실패와 비판에 대한 공포, 미지에 대한 공포, 부상과 작은 동물에 대한 공포, 위험과 죽음에 대한 공포, 병원 공포 같은 것이 있다. 이런 공포는 국적과 무관하게 나타나는 공포다. 그렇기에 일상의 사건에서 이런 것으로 인해 공포와 불안감을 느낄 때 그것을 아이가 약하다고 여기거나 문제가 있다고 여기기 보다 타당한 정서적 반응이라고 생각하고 그 때 느낄 수 있는 공포와 불안을 이해해 주면서도 부모님이 적절한 말과 행동의 모델을 보여주는 것을 통해 불안 해소법을 적절히 배우게 하며 마음을 다스리고 해소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많은 장애들이 그렇듯 아이의 불안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불안으로 인해 아이가 너무 큰 고통을 경험하거나 삶에서 수행해야 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데 방해가 되어 실제 느껴야 하는 불안보다 너무 과도하게 과장이 되어 일상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게 될 경우다. 그 때는 정말 주의 깊게 살펴 보고 빨리 조치를 취해야 한다. 점점 더 불안의 증세가 좋아지지 않고 나빠지고 다양해진다면 그 때도 무조건 발달 단계라고 생각하지 말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 장애로 발전하지 않도록 빠르게 조치를 취하는 것이 좋다. 부모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정상적인 반응이 나중에는 불안 장애로 이어지게 하는 환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렇다고 아동의 불안의 모든 원인이 부모에게 있다는 것은 아니나 가족이라고 하는 환경이 불안에 주는 영향이 크다라고 하는 것은 연구되어 있는 명백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가족은 아동의 불안한 행동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한 실험에서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 지를 가족토의를 통해서 의논하게 했는 데 신기하게도 불안한 아동은 회피 반응이 가족 회의 후에 더 증가했고 반항적인 아동은 공격적 반응이 증가했고 불안하지 않은 아동은 가족 회의 후에 덜 회피적인 되었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이런 다양한 연구들을 통해서 발견된 현상 중 하나는 불안감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당면한 사건에 대한 통제의 경험을 하지 못하게 하는 가족환경과 과보호적이고 자율성을 끄는 부모가 있었고 그 부모는 아동에게 심리적 자율성을 허용하는 경향이 덜하다는 것, 그리고 가족이 덜 지지적이고 응집적이며 의사소통에 있어 덜 민주적이고 더 갈등이 많다고 한다.
예를 들어, 아이에게 설명을 충분히 해주지 않고 심부름을 시키고는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고 야단을 치는 아버지가 있다고 치자. 아이는 심부름을 자율성을 가지고 수행을 하고 싶은 데 어떻게 수행을 해야할 지를 배우지 못해서 불안하고 그래도 심부름을 해야겠기에 나름대로 생각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일을 처리했는데 수행을 하고 나자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부정적 반응을 들을 때 아이는 불안감을 느낄 수 밖에 없게 되고 나중에는 그 불안감으로 인해 수동적이며 무력감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반복된 경험을 한다면 그 아이는 우울하고 불안한 성인으로 성장하게 될 확률이 크다.
대표적인 아동의 불안은 범불안 장애, 분리 불안장애, 사회 공포증에 둘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불안감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은 다양한 인지의 어려움을 경험하게 되는 데 반복적으로 고통스러운 생각을 떠올린다거나 지나친 걱정과 불안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예를 들어, 분리 불안 장애를 경험하는 아이들은 자신이 다치거나 부모가 다치거나 양육자가 자신을 떠나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공포를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위험에 관한 신호를 주는 환경적 단서에 과잉 각성하여 예민하게 반응을 하게 된다.
그러면, 이런 불안한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 수 있을까?
물론, 쉽게 몇 가지 만으로 정답을 말하듯 해법을 던져주는 것은 쉽지가 않다. 불안의 양상과 불안 장애의 종류에 따라서 다르게 진행해야 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한다면 먼저는 심리 교육이다. 불안의 다양한 측면을 배움으로 자신의 감정 상태를 파악하고 구별하는 법을 배우게 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질병 때문인 불안이 아니라 불안 자체가 주는 자신의 증상들을 인식하고 구별할 수 있게 하여 잘 대처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좋다. 다음으로는 이완 훈련이 도움이 된다. 불안할 때는 신체가 경계 신호를 보내면서 긴장을 많이 하게 됨으로 이완 훈련을 통해서 긴장을 풀어내는 연습을 하게 되면 불안한 감정에서 자신을 편안한 상태로 만들어주게 된다. 제일 효과적인 것은 불안감이 느껴지는 실제 상황에서 선생님이나 부모가 그 상황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서 또는 이끌어 주어서 아이가 실제 상황에서 긴장을 풀어내는 연습을 하게 하는 것이다. 이때 아이의 불안과 공포가 클 경우 점진적으로 실제 상황에 노출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세번째로는 아동이 불안과 관련된 혼잣말을 할 때 그 혼잣말의 내용을 검증하고 감소시키게 하거나 부정적인 자기 진술을 바꾸게 하거나 불안한 상황에 대처하는 다양한 문제 해결 기술을 익히게 돕는 방법을 적용해 볼 수 있다. 아이가 문제 해결 방법들을 알게 되면 훨씬 더 덜 불안감을 경험하게 된다.
끝으로 부모님이 기억해야 할 한 가지는 아이의 불안이 부모의 불안이 되지 않도록 그리고 부모의 불안이 자녀에게 흘러가지 않도록 부모 스스로 자신의 불안을 잘 다스리는 연습도 계속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서미진 박사 호주기독교대학 부학장, 호주한인 생명의 전화 원장
아버지로 산다는 것
지난 2월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어버려서 그런 지 책장에 꽂혀있는 <아버지로 산다는 것> 이라는 제목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아버지란 어떤 존재였는 지를 생각하며 그 분의 의미를 되새기고 싶어서 그런 지도 모른다. 책에는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무엇을 주어야 하는 지를 앞부분에서 설명한 후에 뒷부분에서는 16명의 남자들의 아버지에 대한 경험이 적혀 있으며 그것에 대한 해석 및 설명을 저자는 덧붙이고 있다.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아들들의 삶은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삶에서 배우지 못한 것들은 어떤 것들이 지를 보면서 삶에서 좋은 아버지의 영향력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아버지는 자녀에게 무엇을 주어야 할까?
첫 번째는 아버지는 아이에게 좋은 유대 관계를 형성하도록 도와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책에서는 아버지는 인격을 형성하는데 아주 중요한 영향을 주게 된다고 말한다. 그것은 어린 시절의 유대 관계가 인격을 형성시키는데 주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가 아빠와 유대 관계를 골고루 잘 맺게 될 때 한 사람의 대상과만 유대 관계를 잘 맺어 나쁜 아빠, 좋은 아빠와 같은 한 쪽으로 치우친 대상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게 되는 것이다. 엄마나 아빠 모두 잠깐 눈에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그들이 나를 사랑하고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줄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엄마라는 한 대상이 아닌 아버지에게도 충분히 경험을 할 수 있을 때 아이는 사람이라고 하는 대상에 대해서 건강한 이미지를 갖게 되고 신뢰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좋은 유대관계는 어떻게 형성될 수 있는 것일까? 아빠가 아이를 좋은 곳에 데리고 다닌다고 유대감은 저절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필자 또래의 많은 성인들의 아버지들이 그러했던 것을 볼 수 있다. 한 번씩 자녀를 데리고 동물원이나 계곡에 놀러가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자녀를 향한 사랑의 표현이었고 그것으로 자녀들과 소통을 해결하는 부모들이 많이 있었다. 그렇다 보니 사랑을 받았다고는 생각하나 유대감을 형성하고 그 유대감을 통한 안정감과 만족감을 가지고 있으신 분들을 그렇게 많질 않다. 유대감은 부모와의 솔직한 대화를 통해서 형성이 될 수 있는 것이고 거기에 일관성이 있을 때 가능하다. 아빠는 자녀를 격려해야 하며 약속한 것을 지킬 수 있어야 하고 부정적 감정도 대화로 잘 소통할 수 있을 때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건강한 유대감을 갖고 성장하게 된다. 이런 부모의 건강한 관심과 대화는 아이로 하여금 사람들을 신뢰하게 하며 자신에 대해서 긍정적 정서를 형성하게 되고 그것이 사회성으로 이어져 사회에서 사람들과 잘 어울려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된다.
두 번째로 아버지들은 아이들과 잘 놀아 주어야 한다. 아이가 성장하는 데 아버지가 적극적으로 잘 놀아준 아이들은 아버지와 사이가 좋으며 관계가 안정적으로 발전한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서 삶의 기술들을 배운다. 그러므로 그 시간들은 그냥 허비하는 시간이 아니라 아이들이 성장하는 시간이다. 아이들은 아버지와 함께 놀이를 하면서 격렬한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을 키우고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지켜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에릭 프롬이 쓴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에는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사랑이 필요한데 그 중에 엄마와 아빠의 사랑이 아이에게는 꼭 필요한 부분인데 엄마의 사랑과 아빠의 다른 사랑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엄격하고 규칙과 규율을 배우는 훈련에 대한 사랑을 아버지로부터 받아야 하는 부분을 언급하고 있다. 그렇기에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은 너무 중요한 부분이다. 필자도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아버지가 함께 놀아주었고 시간을 함께 해주었던 부분이 인생에 있어서 아주 따뜻한 기억이며 동시에 아버지의 훈련을 통한 훈육을 통해 질서에 순종하고 질서에 대한 존중을 배울 수 있었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준 경험을 통해서 아버지를 필자처럼 기억하는 동시에 상상 속에서 그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도 하는데 아버지가 자주 자리를 비우거나 믿음을 주지 못한 경우에는 아이가 공격적 행동을 하게 되거나 아주 소극적인 아이의 경우 아버지를 이상화시켜 동경하는 일이 생겨날 수 있게 된다.
어떤 분은 아버지가 자신과 전혀 놀아주지 않으시다가 사춘기에 갑자기 자신의 공부에 관심을 가지게 될 때 그 아버지에 대해 적대감을 갖게 되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놀이를 함께해주는 허물없는 아버지는 좋은 점도 나쁜 점도 가지고 있는 한 인간으로 이해되어야 하고 그것을 통해서 아이들은 건강한 성 정체성을 갖게 되는 것에 기초를 형성하게 되고 바른 양심을 갖게 되는데 중요하게 기여한다. 이 시대에 건강한 성 정체성을 갖지 못하게 되고 도덕성의 결여로 인한 많은 문제들이 일어나는 것은 어쩌면 아버지의 부재에 있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함께 놀아주며 시간을 함께 하는 아버지의 자리를 지켜 나가는 아빠들이 필요하다.
세 번째로 아이들에게 아빠는 격려를 많이 해주어야 한다. 특히, 청소년기에 있는 아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 가면서 인생의 계획을 세워 나가게 되는데 부모들에게 정서적 지원과 격려를 많이 받은 청소년들은 미래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며 인생의 어려움과 고비를 잘 이겨낼 수 있게 된다. 특히, 또래의 영향력이 가장 많은 시기에 있는 청소년들이 중요한 결정을 하게 될 때 가족과 소통하며 부모와 마음이 잘 통하면 또래의 이야기를 듣기 보다 가족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잘못된 길로 가지 않으며 사려 깊고 사교적인 사람으로 잘 자라게 된다. 그것을 위해서 아버지들은 여성으로 성장해 가는 딸을 칭찬해 주어야 하고 남자로서 성장해 나가는 아들이 자신감을 더가지고 확신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격려해 주어야 한다. 이렇게 성장한 아들은 20대 후가 되면 아버지를 삶의 모델로 삶게 되고 아버지로서의 삶을 시작할 준비가 된다. 그렇지 못할 때 아들은 독립된 성인 남자로서 살아가기 보다 독립하지 못하고 엄마에게 의존하는 아들이 되기도 한다.
한국 가정을 보면 아버지가 부재한 가정으로 인해 아버지의 권위가 상실된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들의 수고와 존재 가치의 중요성을 하락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한 인간이 성장하는데 있어서 정말 중요한 아버지의 역할을 아버지들이 찾고 이제는 지켜 나가야 할 때라 생각된다.
서미진 박사 호주기독교대학 부학장, 호주한인 생명의 전화 원장
진심어린 작은 친절
얼마전, 차에 사고가 나서 앞에 범퍼가 부서져 바람에 덜렁거리고 운전석의 문은 열리지 않는 상태였다. 차를 고치기 위해서 수리소에 맡기는 과정에서 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평온을 비는 기도
금주자들 모임에서 공식적으로 '평온을 비는 기도'의 내용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준다. "하나님, 제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함을 주시고 제가 바꿀 수 있는 것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그리고 저에게 그 둘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불안감을 많이 느끼는 사람들은 일어날 많은 것들에 대해서 파국적 사고를 함으로 그 불안을 더 많이 느끼게 되는데 극단적인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을 종종 사고하면서 그것에 대한 해결책이 내게는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남편이 늦게 들어오는 경우 남편이 술을 많이 마셔서 집으로 돌아오다가 사고가 나는 상상을 한다거나 술김에 도박을 한다 거나 하는 상상을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솔직히 아내로서는 전혀 손을 쓸 수 없는 일이다. 이런 경우에 위에 나오는 평온을 위한 노력을 위해 내가 바꿀 수 있는 것들과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여서 평안함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남편이 늦게 귀가하는 것에 대해서 느끼는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아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전화를 해서 언제 오는 지를 확인한다 거나 또는 조심해서 안전하게 귀가를 하도록 당부를 하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남편을 지켜주도록 하나님께 기도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아내가 남편의 늦은 귀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 다음의 도박을 하면 어쩌지 또는 사고가 나면 어쩌지 하는 일은 아내가 바꿀 수 없는 일이기에 그 부분은 내가 바꿀 수 없는 일임을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안전할 것을 기대하며 소망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감정은 에너지가 있다. 그래서 사람으로 하여금 행동을 취하게 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작은 불안을 많이 느끼는 사람들은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자신에게 불안감을 주는 일들을 빨리 빨리 처리하기도 하고 불안감이 들면 그것을 짜증이나 화로 분출하기도 하고 불안감이 심해지면 극도 한 불안감으로 인해 과 각성 상태가 되어 잠을 자지 못하고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왔다 갔다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걱정과 불안의 대부분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고 있고 그렇기에 걱정과 불안에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하거나 잠을 자지 않거나 화를 내는 것과 같은 건강하지 못한 방법으로 사용하지 않고 불안의 에너지를 앞에 나오는 것처럼 기도를 통한 믿음으로 바꾼다거나 그 불안의 에너지를 나를 성장시키는 도구로 사용한다면 불안은 이빨을 내민 공룡처럼 거대하게 나를 삼키는 요인이 아니라 불안을 통해 나를 성찰하고 불안을 잘 이해함으로 성장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
유노북스에서 나온 '불안과 잘 지내는 법' 책에는 불안은 더 나은 삶을 위한 강력한 자극이라고 보며 불안의 에너지를 건강한 것에 '포커싱(집중)'해서 잘 사용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자칫 잘못하면 불안감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불안이라는 것 자체에 모든 에너지와 시간을 다 빼앗기에 되는데 그렇게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그 시간에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있는 것에 포커싱(집중)을 해서 초점을 맞추다 보면 불안이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내담자를 도우면서 내담자가 불안한 것에 너무 시간과 마음을 빼앗겨 버리는 것을 보고 불안이 왔을 때 포커싱 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전략적인 대비를 했더니 한 주가 지난 다음 내담자는 불안을 상당히 많이 다스리고 평안을 되찾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방법은 수용 전념 치료에서 사용하는 법과 비슷하다. 불안이라고 하는 것을 없애려고 노력하기 보다 불안이 없을 때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해 보고 지금 불안이 없는 때 하고 싶은 일, 그것에 초점을 맞추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면 불안이 어느새 나를 압도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 주 전에 빈 집에서 남편과 하루를 머무는 경험을 했다. 밤이 되어 잠을 자려고 하는데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면서 불안이 다가왔다. 그리고 머릿속에 이상하게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막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남편은 벌써 잠이 들었는데 그런 느낌이 들자 갑자기 불안해졌다. 그 생각에 압도가 되면 안 될 것 같아 그 빈집을 축복하는 기도를 하고 그 날 낮에 있었던 좋은 기억들을 떠올려서 감사한 생각했더니 마음이 다시 평안해 졌고 금방 잠에 들 수 있었다. 이 경우에 '포커싱 기법'을 의도적으로 적용한 것은 아니지만 시각적인 나쁜 이미지를 일부러 없애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좋았던 기억에 집중하고 감사한 마음에 집중함으로 불안감이 사라진 것이다.
불안감이 몰려오면 그것을 특히 잘 견디지 못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 분들은 좌절감에 약한 분들이다. 특히, 이런 분들 중에는 어린 시절에 부모님으로부터 마땅히 형성되었어야 하는 안전함, 중요감, 가치감과 같은 필요들이 채워지지 않아서 너무 쉽게 자아감이 흔들리다 보니 불안감을 많이 경험하게 되고 그것이 관계에서 어려움을 가져오게 하거나 정서적인 장애로 이어지게 되기도 한다. 불안감을 느낄 때 배우자에게 짜증과 화를 쉽게 내기도 하고 그것이 관계를 어렵게 만들게 한다. 그리고 불안감 때문에 강박적으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분의 경우에는 불안한 내면의 자아를 인정해주고 격려해 주고 존중해주는 경험을 많이 하고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기억의 새로운 조작을 통해 자신의 불안을 다루어 나가는 훈련을 할 수 있다. 불안해하는 내면의 자아가 필요로 하는 욕구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그것을 내가 자기 공감으로 또는 자기 돌봄으로 양육해 주는 것을 통해 스스로 불안을 다스리고 이겨내는 연습을 할 수 있다. 어린 시절의 상처로 인해 건강한 자아상이 없는 경우 외부적 위안이나 돌봄이 일시적인 위로를 줄 수 있으나 진정으로 평안을 되찾고 불안을 극복하는 힘을 얻기 위해서는 내 스스로가 나를 돌보는 법을 배워서 나를 성장시키는 경험을 지속적으로 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고 필요하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통해서 트라우마 치료와 자기 돌봄을 배워가는 것이 필요하다.
불안이 다가올 때 그것에 압도되지 말고 앞에 나온 포커싱 기법이나 또 트라우마 치료와 같은 것을 통해 자아를 튼튼하게 하는 것들이 도움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고 툴 박스에 넣어두어 불안할 때 사용해 보자. 어느 때보다 불안함이 많은 시대에 사는 우리는 불안과 친구가 되어가는 지도 모르겠다. 그 불안의 친구를 좋은 에너지로 활용해서 더 성장하고 나를 알아가는 축복의 통로 그리고 나의 가치를 실현하는 도구로 사용하여 불안한 이 시대를 잘 살아 내길 바란다.
서미진 박사 호주기독교대학 부학장, 호주한인 생명의 전화 원장
치유의 여정 “자기 돌봄”의 중요성
한 여성이 비만의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키는 150센티 미터 중반인데 몸무게는 100kg이 넘었다. 이 여성이 비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전문가의 도움을 받게 되었는데 이 여성의 비만의 문제에는 심리적인 부분이 많이 작용한 것을 볼 수가 있었다. 10대 때 누군가 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후로 자신을 사랑할 수가 없었고 사람들 앞에 서면 자신감이 떨어지고 사람들의 시선을 늘 의식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랬던 그녀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외모가 뚱뚱하고 보기 싫어야 사람들의 시선을 받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 자신의 외모를 돌보지 않게 된 것이다. 잠깐 체중을 관리하고 예뻐진 적이 있는데 그것이 남성들의 시선을 사게 되는 것 같아서 다시 많이 먹어서 체중을 늘려서 매력이 없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녀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왜 그녀는 문제의 원인을 자기에게 돌려서 자신을 돌보지 않고 자신을 미워하는 행동을 하게 된 것일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외부로부터 온 상처나 자극에 의해서 어려움을 겪고 난 후에 그 어려움을 겪은 나를 위로해주고 잘 돌보기는커녕 그 어려움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고 나를 학대하고 나를 미워하는 많은 행동들을 자신에게 행하는 경우가 많다.
'자기 돌봄'은 치유의 여정을 겪는 많은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부분이다. 상처받고 힘들었던 내가 힘을 얻고 다시 나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돌봄이 필요한데 많은 경우 인간 관계로 인한 상처들을 회복하는데 있어 우리는 우리 자신이 자신을 돌보려 하기 보다는 주위의 사람이 배우자가 또는 누군가가 나의 상처를 싸매어 주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누군가 나를 위로해 주어서 잠깐 마음이 편안해지고 긍정적으로 된다 하더라도 지속적인 자기 돌봄이 없으면 우리는 금방 쉽게 또 좌절해 버리고 또 다른 상처를 받아서 또 누군가의 위로와 돌봄을 기다리게 된다. 현대의 많은 정신 질환을 치료하는 약들이 탁월한 효과들을 자랑하지만 어디까지나 약은 증상을 완화시키는 것이지 원인을 찾거나 삶의 습관이나 생각의 틀을 바꾸어 놓지 않는다. 그런 것처럼 타인을 통해서 위로와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그것은 증상을 완화시키는 약과 같은 역할에 그치는 것처럼 장기적인 변화를 가져다주는 역할을 하긴 어렵다. 그래서 결국은 내가 나를 정기적으로 잘 돌보는 법을 알고 자신을 잘 돌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성숙한 인간으로서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게 된다.
자기 돌봄이라는 단어는 1950년대, 60년대에 등장한 말로 정신 질환자들이 기관 시설에서 나오면서 생겨난 말이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관련해서도 사용된 말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정신 질환과 관련해서 건강하게 살기 위해 자기 돌봄을 해야 한다고 했다면 지금 시대에는 전문적이며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누구나 정기적으로 실행해야 할 삶의 한 부분이라고 여겨진다. 사람들은 자기 돌봄을 잘 해야 한다고 알고 있지만 자기를 잘 돌보는 것을 이기적이라고 생각하거나 자기 돌봄을 잘 하다 보면 성공을 못한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일 중독'과 '완벽주의'의 사회가 정상적인 것처럼 여겨지는 사회에 살다 보면 자기 돌봄을 해야 하는 줄을 알면서도 사회에서 요구하는 시스템에 속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 필자의 딸이 직장을 옮겼는데 그 사무실에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하루에 8시간을 일하는 것이 아니라 9시간이나 9시간 30분을 하루에 일을 한다고 한다. 본인은 일찍 와서 충분히 일을 하고 시간에 맞추어 집에 가고 싶은데 주위의 사람들이 더 늦게까지 일을 하고 눈치를 주는 것 같아서 자신도 그 자리를 빨리 박차고 나올 수가 없다고 한다.
자기 돌봄에 있어서는 약간의 차이가 크다. 머그잔에 담긴 커피를 생각해 보자. 보통은 정확하게 그릇에 맞추어서 커피를 주는데 조금 만 더 부어도 그 커피는 넘쳐 버리게 된다. 넘치지도 않고 커피잔 안에 분량을 정확히 맞추어서 커피를 만드는 것이 기술인 것처럼 내가 감당해야 하는 삶의 무게를 자기 돌봄을 통해서 적절하게 잘 하면 정확한 분량으로 인해 그 기능을 다 할 수 있지만 자기 돌봄이 없이 내가 담을 수 있는 커피의 분량을 생각하지 않고 조금 더 부어 버리면 마시기에 적합하지 않은 커피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내 몸도 망가지게 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탈진(burnout)을 경험하게 되고 더 이상 일의 흥미를 잃어버리게 될 뿐 아니라 몸도 마음도 망가지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어떤 여성분은 융통성이 좀 부족하고 매뉴얼이 있으면 매뉴얼 그대로 해야 마음이 편한 사람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맡은 일에서 매뉴얼처럼 하나하나 정확하게 지키려고 했고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을 했는데 그렇게 온 힘과 정성을 다하는 자신의 일로 인해서 매일 저녁 집에 오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어서 침대에 누워만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지친 그 분에게 일터에서 최선을 다할 필요는 있지만 완벽주의가 될 필요는 없으며 최선을 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에너지를 100% 그것에 다 쏟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최선을 다하는 것에는 자신을 돌볼 수 있는 것도 들어가고 최선을 다하는 것은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이 일을 오래 하기 위해서 나는 하루의 에너지를 얼마나 써야 하는 지를 계산하는 것도 최선을 다하는 것에 속한다고 생각을 바꾸어 주었더니 그 분의 삶에 변화가 찾아왔다. 매일의 삶에서 중간에 쉬는 시간이 있어서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집에 돌아와서 개인적으로 즐거워하는 일들을 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래서 더 이상 그만 두어야겠다는 극단적인 생각도 멈추게 되었다.
자기를 돌보는 것은 가던 길을 더 잘 가기 위해 지금 잠깐 멈추는 것이다. 집중이 잘 되어도 50분마다 한 번씩 일어나 체조를 하며 자신의 몸을 돌보는 것이고 자기 돌봄은 아플 때만이 아니라 매일의 삶에서 나의 우물이 마르지 않게 재충전시켜주는 건강한 습관이다. 그럴 때 우리는 방전된 밧데리같은 사람이 되지 않고 계속해서 흘러 넘치는 샘물과 같은 기쁨과 에너지가 있는 풍성한 삶을 살게 된다.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은 더 많이 자기 돌봄을 하고, 건강한 사람도 꾸준히 '자기 돌봄'을 적용함으로 '굿 라이프'를 모두가 살아 내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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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고 축복합니다. (God loves you and bless you)
Rev Dr. HUN KIM...
굿모닝을 당하다.
학교에서 학생들과 나눔의 시간이 있었는 데 한 학생이 자신이 우울증과 무기력함으로 힘이 들었는데 호주에 와서 사람들이 자신에게 "굿 모닝" 이라고 인사를 해주는 것을 통해서 어제의 삶이 아닌 그리고 내일의 삶이 아닌 오늘의 삶을 새롭게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렇게 하루 하루 굿 모닝을 당하다 보니 자신의 삶이 살아갈 이유를 발견하고 괜찮아졌다는 이야기였다.
영어를 배우면서 제일 먼저 배우는 말이 "굿 모닝" 이라는 인사 말인데 단순한 인사말로만 받을 것인가 아니면 그것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서 "그래, 오늘 아침은 정말 좋은 아침이야 " 라고 받아들일 것인가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을 하느냐에 따라 아침을 맞이하는 한 사람의 마음은 천국이 될 수도 있고 지옥이 될 수도 있다. 아침에 만나는 늘 같은 사람들이 형식적으로 인사하는 굿 모닝은 '오늘도 어제와 똑같은 하루입니다. 오늘도 특별한 것을 없겠지요! 오늘도 기대가 되지 않지만 살아야 하니 억지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오늘도 그런 삶을 살아가는 당신에게 '굿 모닝' 합니다.' 이런 굿 모닝은 우리에게 생명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 그것은 지치고 식상한 의미 없는 한 마디일 뿐이다.
그에 비해서 하루의 삶을 신이 주신 놀라운 선물인 것을 기억하며 누군가에게 새롭고 가치 있는 아침을 선사하는 의미로서의 "굿 모닝"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오늘은 어제 없었던 새롭고 좋은 날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우리 기대해 봅시다. 당신에게도 멋지고 새로운 일이 일어나기를 축복하고 바랍니다.' 라는 뜻을 담고 있다. 위의 굿 모닝을 당한 학생은 아마도 누군가로부터 굿모닝 인사를 통해 축복을 경험하고 마음이 녹아지고 따뜻해지는 경험을 했음이 틀림없다.
살다 보면 과거에 대해서 후회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가까운 지인 중에 한 분이 늘 과거에 대해서 후회하는 말을 많이 하곤 했는 데 세월이 흘러서 그 분이 자신이 과거에 대해서 후회하면서 너무 많은 세월을 보냈다고 이야기하면서 이제는 바꿀 수 없는 과거로 인해 후회하면서 살지 않기로 했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듣고 너무 잘 했다고 격려를 해 주었는데 신기한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은 지인의 딸이 엄마와 같이 과거의 후회스러운 일로 인해서 너무나 고통스러워하며 밤에는 잠을 잘 못자고 불안해하며 오늘을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엄마의 부정적 사고 패턴이 아이에게 자연스럽게 전수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현재의 삶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 과거를 돌아보면서 과거의 잘못된 선택에 대해서 후회하고 그것에 대해서 누군가를 원망하고 돌이키지 못하는 과거로 인해서 분노와 슬픔을 느끼고 그 감정을 현재의 삶에서 고스란히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무기력감과 죄책감 그리고 자기 연민 또는 피해 의식 속에서 살아가는 분들이 생각 외로 많다. 그런 분들에게 '굿모닝' 이 필요하다. 그 분들에게 '어제의 다른 선택이 오늘의 다른 삶을 만들었을 지 모르나 당신이 살아내야 하는 현실의 삶은 오늘 입니다. 그러므로 힘이 들던, 좋던 간에 현재의 삶을 받아들이고 거기에서 '굿 모닝'을 찾아가고 만들어 가세요' 라는 격려의 굿 모닝 말이다.
아프리카에서 풀을 뜯어 먹고 사는 얼룩말은 아주 짧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멀리서 사자가 지켜 보고 달려 올 수도 있는데 아주 여유롭게 풀을 뜯어 먹고 한다는 것이다. 10분 전에 도망가고 힘들었던 것을 잊어버리고 지금 여기에서 여유롭게 풀을 뜯어먹으며 행복할 수 있는 것이 얼룩말과 같은 동물들이다. 그에 비해서 인간들은 어떠한가? 10년 전 어쩌면 수십년 전에 기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그 기억과 관련된 감정을 바로 재경험하기도 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다. 기억을 너무 잘 하다 보니 비슷한 모습을 가진 사람을 보면 경멸감을 느끼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한다. 또한 트라우마와 같은 기억은 생각하고 싶지 않은 때 불쑥 불쑥 파편의 기억으로 다가와 괴롭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 기억으로 오늘을 괴롭게 살아가는 증상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라고 하는 이름까지 붙혀져있다.
왜곡된 사람의 기억이 현재의 삶에도 고통을 주고 현재에 가능해야 하는 사회적 기능을 잘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되면 현재를 '굿 모닝'으로 살아가기 위해 심리 치료의 일환인 기억 치료를 받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좋은 기억으로 대체되지 못한 나쁜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뿌리의 역할을 해서 연관된 또 다른 나쁜 기억들을 생성해 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아버지에게서 상처를 많이 받아서 권위자에 대해 신뢰가 없던 사람이 있다고 할 때 그 사람의 기억이 과거의 기억임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또 다른 권위자 예를 들면, 직장 상사와 같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신뢰 없음이 적용이 될 수 있고 그것이 정정이 되지 않으면 더 강화가 되어서 '역시, 권위자들은 다 문제가 있어. 신뢰하면 안되는 거지!' 라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쁜 기억 위에 또 다른 나쁜 기억이 합쳐져서 자신의 왜곡된 신념을 더 강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삶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마음의 상처도 최대한 빨리 치료를 받아서 얼룩말처럼 지금의 삶에서 평안하게 풀을 뜯으며 살아갈 수 있을 때 오늘의 '굿 모닝'을 최대한 경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큰 상처가 없다면 작은 일상의 훈련들을 통해 매일의 삶에서 굿 모닝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매일의 삶에서 '감사 일기'를 쓰는 것이다. 감사는 부정적 기억도 긍정적이게 도와준다. 그 외, 아침에 일어나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시 복식 호흡을 하며 하루를 오감을 느끼며 자신을 격려하며 시작하는 것 또는 하나님께 하루를 위탁하며 그 하루를 '굿 모닝'으로 시작하는 것 등을 통해 오늘 하루를 사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염려, 걱정이 많은 사람은 아침에 노트에 염려거리를 기록하고 일기가 염려는 갖고 있고 나는 염려하지 않는 하루를 보내기로 결정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성경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롭게 되었도다." 어제의 나, 어제의 상처, 어제의 일들은 오늘을 살게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며 눈부신 오늘 하루를 '굿 모닝'으로 맞이하며 충만한 하루를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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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고 축복합니다. (God loves you and bless you)
Rev Dr. HUN...
불안감
여기, 저기서 불안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소식을 접하게 된다. 어린 시절 상처로 인한 불안감이 있는가 하면 나이가 들어서 생기는 연약함으로 인한 불안감도 있고 환경적인 부분에서 만족이 되지 못하는 상황들로 인한 불안감을 경험하는 등 다양한 불안들을 경험하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현대인의 현 주소에는 '불안'이 있고 이 불안을 잘 극복하는 것이 삶의 질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보게 된다.
불안을 없애기 위한 노력으로 사람들은 다양한 노력들을 하게 되는데 그 중 많은 사람들은 '돈'을 모으려 한다. 돈이 있으면 불안한 상황에서 좀 더 잘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돈을 모으기 위해 일을 해야 하고 쉬지 못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일 수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돈이 많다고 그 불안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돈이 많으면 돈을 잃어버릴까 봐 두려워한다.
아는 지인과 이야기를 하다가 자신이 금이 한 주머니가 있었는데, 어느 날 도둑이 집에 와서 그것을 훔쳐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전에는 금으로 인해서 매일 불안했는데 금이 없어지고 나자 차라리 마음이 편안해 졌다는 것이다. 불안하다는 것은 어쩌면 바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처럼 되지 않고 안 좋은 상황에 이르게 될까 봐 불안해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기대를 내려 놓으면 오히려 불안하지 않을 수 있는데 어쩌면 현대인은 너무나 많은 기대와 욕심을 가지고 살아가기에 불안한 것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것도 없는 중에 감사하고 나누며 웃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은 무소유가 오히려 불안과 염려를 가져가게 하고 평안함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위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불안은 재정이 아주 많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재정이 너무 없다고 없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어느 한 분이 늘 불안하였는데 그 불안은 어릴 적 경제적으로 너무 어렵게 살아서 늘 걱정을 하는 것이 생활의 습관처럼 되다 보니 지금은 그렇게 어려운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매일 불안하고 매일 염려하는 삶을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런 분에게 불안은 그냥 하나의 습관이다. 불안해하고 염려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은 감사하면서 자신 안에 있는 자원들을 자꾸 기억하는 것이 불안을 이겨내는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늘 집이 없어서 불안했던 사람이 집을 구입하게 되자 이제 집을 구입할 때 빌린 빚(loan)을 갚아 나가는 것을 걱정하게 된다고 생각해 보자. 이럴 경우에는 '내가 집이 없었는데 집을 갖게 되었으니 너무 감사하구나' 라고 옛날 보다 나아진 조건으로 인해 감사해야 하고 지금까지 재정적으로 책임 있게 살아온 나의 능력이 있으니 앞으로도 잘 할 수 있을 거야 하고 나의 자원을 찾아서 불안을 이겨내는 도구로 사용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재정과 같은 환경적 요인으로 나의 불안이 다스려질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다. 물론, CoVid-19과 같은 외부적 큰 사건들이 불안을 가져오지만 결국 그 시대적 불안에 대처하는 정부나 기관들의 노력과 함께 개인이 당면한 불안을 이겨내야 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의 불안을 잘 이해하고 내가 나를 잘 돌보는 전략들을 통해 불안을 이겨내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다.
어떤 사람은 배우자가 언제 화를 낼 지 몰라 늘 불안해한다. 누구나 폭력 앞에서 사람은 두려워지고 공포를 느끼는 것이 정상이고 그것이 몇 번 경험되어지고 나면 폭력 앞에 있는 사람은 무기력함을 경험하게 되고 폭력의 환경에서 자신은 보호받지 못하고 아무런 대처도 할 수 없는 자로 여기며 우울해지게 된다. 이런 불안감을 늘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불안감을 느끼지 않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음 같아서는 폭력을 행하는 가족이 있으면 "당장 신고하고 안정한 상황 가운데 사세요!"라고 말하고 싶지만 때로 폭력을 행하는 사람도 상처받은 사람이고 피해자로 살아왔던 적이 있던 사람이기에 그를 불쌍히 여기며 살아가는 배우자를 볼 때 최대한의 안전 대책만 돕게 될 때가 있다. 이렇게 환경이 변화하지 않아 늘 불안함을 경험하면서 살아갈 수 없는 사람에게는 무기력감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불안과 폭력의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필요한 부분이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보호할 수 있고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작은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힘을 키워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오랫동안 무기력 가운데서 잃어버린 자신의 가치와 소중함을 찾아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때, 그 불안감을 진정으로 이겨내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불안이 불면증으로 다가온다. 불안한 사람은 잠을 자거나 깜깜한 밤을 두려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떤 이는 잠을 자다가 깨지 못하고 목숨을 잃어버리게 될까 봐 두려워하는 경우가 있고 어떤 이는 잠을 자다가 깨고 나면 더 이상 잠을 잘 수가 없어서 불안해하고 어떤 이는 잠을 들지 못해 불안해하고 어떤 이는 잠을 자다가 악몽에 시달려서 잠을 두려워한다. 또한, 깜깜한 것 자체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빛이 없는 환경에서 불안감을 많이 경험하고 불을 켜 놓고 잠을 청하다 보니 잠을 깊이 자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불안감이 불면증을 일으키게 되는데 나중에 불면증이 점점 심해지면 불면증 자체가 불안감을 더 일으켜서 악순환을 거듭하게 되는 경우도 생겨나게 된다.
잠의 경우에는 불안함으로 생기는 잠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 버리는 것이 오히려 잠을 자는데 도움이 된다. '못 자면 어쩌지? ' 라고 하는 불안한 생각을 '잠이 안 오면 안 자면 되지!' 라는 생각으로 불안한 생각을 편안하게 바꾸어 주는 것이 잠을 자는데 도움을 준다. 어떤 한 분이 잠을 자고 깨지 못하면 어쩌지 라는 생각을 한다고 하길래. 크리스챤 인 그 분에게 그러면 "잠을 자고 못 깨면 어때 ~ 나는 더 좋은 천국에 가면 되지! " 라는 생각을 하라고 했더니 훨씬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응답을 주셨다. 만약 최악의 상황이 생기면 나는 이런 대처를 할 수 있어 라고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 많은 사람의 불안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불안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질을 낮추는 일을 하고 있다. 불안감은 누군가 에는 미래를 준비하고 누군가에게는 더 기도를 하게 하고 누군가에게는 적극적이게 하는 좋은 면이 있기도 하지만 만성적이고 반복적인 불안감은 대부분의 경우 무기력하게 하고 짜증을 내도록하고 불안을 없애 주는 행동이나 물건들에 집착을 보이게 한다.
그러므로 불안할 때 그냥 내버려두지 말고 불안감을 없앨 수 있는 적극적 전략들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그것들에는 운동하기, 복식 호흡, 최악의 상황에서 대처하는 나의 모습 그리기, 감사하기, 나의 자원 기억하기, 극단적 생각을 객관화하기, 기도하기, 걱정 인형 사용하기 등과 같은 것 등이 있다.
무엇보다도 불안이 나의 문제만이라 생각하지 말고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라 생각하며 불안한 나를 나무라기 보다 공감해주며 격려로 이겨낼 수 있게 도와주는 "자기 긍휼 (self-compassion)"이 필요할 것이다. 현대 사회의 문제인 불안의 문제를 함께 우리 공동체가 이겨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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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고 축복합니다. (God loves you and bless you)
Rev Dr....
융통성 있는 생활 양식
아침에 잠을 깨우기 위해 신나는 음악을 틀었다. 그런데 이상한 음이 나오면서 잘 들리지가 않았다. 음량도 조절해 보고 눕혔다가 세웠다가 전화기를 이리 저리 옮겨 보았지만 도저히 소리가 이상하게 들려서 전화기가 고장이 났나 했다. 그런다 눕혔더니 소리가 나쁘지 않은 것 같아 그렇게 듣고 있는데 부엌을 지나가고 있던 딸이 "왜 그렇게 빨리 듣고 있어! 라고 하며 들어와서 속도를 조절해 주었는데 알고 보니 어제 방송을 보다 소리를 빨리 설정해 놓았던 것이다. 무엇이 원인인지도 모르고 나는 엉뚱한 곳에서 답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아침의 이 경험이 나에게 작은 통찰을 주었다. 프로그램이 바뀔 때마다 셋팅이 바뀌어져야 하는 것처럼 시대나 상황이 바뀔 때마다 세팅을 바꿀 수 있을 때 잘 기능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데 나도 모르게 우리는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내가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거기에서만 답을 찾으려 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인생에 경험하는 것들에는 정해진 답이 없는 경우가 많다. 어떤 사람에게는 적절하던 것이 나에게는 맞지 않고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나 좋은 것이 나에게는 좋은 것이 아니라 쓰레기가 될 수도 있고 또 그것이 언젠가에 따라 다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제 남편이 팬트리에 설치할 수 있는 가구들을 집으로 가지고 왔다. 멀리 골드 코스트로 가는 가족이 있는데 가게에서 사용한 물건들이 더 이상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 분들에게는 필요 없는 것들이 우리에게는 필요한 것이었기에 감사하며 가지고 올 수 있었다. 이처럼 누군가에는 쓰레기로 처분이 되어야 하는 것이 누군가 에는 귀하게 사용되어질 수 있는 것이 될 수 있기에 정형화된 답을 찾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의 상황에 맞는 답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나만의 고정된 틀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지고 있어서 그것이 마치 유튜브의 세팅이 잘못되어서 내가 이상한 속도로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 것처럼 불편한 상황인데도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나에게는 예의 범절이 중요하고 어른들을 챙기고 선, 후배를 따지는 것이 중요한 경험이고 삶의 많은 부분이 그렇게 셋팅이 되어 형성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우리 자녀들이 살고 있는 세상, 특히 호주 사회에서는 그런 부분들이 중요하지 않을뿐더러 그런 세팅이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인사를 강요하고 예의를 지키지 않는다고 나무랄 때 우리는 불편한 관계를 경험할 수밖에 없게 된다. 마치 다른 프로그램인데 여전히 이전 프로그램의 세팅 속도를 적용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알프레드 아들러는 이런 인생의 고정된 틀이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형성이 되는 데 그것을 '생활 양식'이라고 명명하였다. 어린 시절에 형성된 자신에 대한, 타인에 대한, 세상에 대한 틀이 평생을 살아가는데 고정된 틀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 사람의 성격 형성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고 대인 관계에서 상호작용을 할 때도 지대한 영향을 주어서 그것이 건강하게 형성이 되었으면 평생 평안한 삶을 살아가는 반면 건강하게 형성되지 못한 생활 양식의 고정된 틀을 자신을 힘들게 하고 관계의 어려움을 겪게 하고 더 나아가서 개선이 되어지지 못하면 왜곡된 성격의 틀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아픔을 경험하게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삶에게 모든 것을 다 내어주고 희생하고 자신을 잃어버리는 패턴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다 해주면 자신이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사람을 찾지만 상대로부터 학대를 경험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와 같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활 양식이나 관계 패턴이나 사람에 대한 편견이나 이해의 틀을 잘 알 지 못하면 살아가면서 반복적인 관계의 아픔을 형성하게 된다. 융통성 있게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나를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고 나에게 잘못 세팅 되어져 있는 부분이 어떤 것이 있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비록 생활 양식이 건강하지 못하더라도 그것에 대한 인식이 있을 때 우리는 얼마든지 성장과 변화를 경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우연히 유투브에서 싱글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짝을 찾아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는데 남자 할아버지 네 명과 여자 할머니 네 명이 등장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할아버지는 키가 크고 좋은 직업을 가지고 멋쟁이 옷차림의 사람이 아니었다. 인상이 서글서글하고 사람들과 융통성 있게 대화를 잘 나누는 동네 아저씨 같은 사람이 제일 인기가 있었다. 나이가 들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서 인생을 많이 살아보니 돈도 외모도 더 이상 많이 중요하지 않은 시기에 도달하니 더 중요한 것이 건강한 생활 양식을 가지고 융통성 있게 열린 태도의 사람이 더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성숙해져서 더 많은 융통성과 삶의 경험을 통합함으로 오는 성숙의 아름다움이 있는가 하면 잘못된 셋팅으로 인생을 계속 살아감으로 인생의 마지막에 고집불통의 닫힌 태도를 가지고 타인을 원망하며 세상을 원망하며 자신을 바라보지 못하여 외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융통성과 삶의 통합을 경험한 사람들의 주위에는 가족들이 많다. 자녀들이 그들과 함께하기를 원하고 그들을 닮기 원하고 그들을 따르기 원한다. 반면에 그렇지 못한 분들의 삶은 가족들이 멀리 떠나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고 융통성 없고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는 삶의 태도가 자녀들과 후손들에게 불편을 주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원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우리는 내가 경험한 인생의 틀이 내가 세팅한 삶의 태도가 전부일 것이라고 하는 안일한 태도를 버리고 나를 돌아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나의 인생을 바라보는 셋팅이 어떻게 형성 되어있는지를 인식하고 건강한 틀이 아니라면 나이와 상관없이 과감하게 깨뜨리며 살아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장성한 자녀와 또는 결혼한 자녀와 자꾸 갈등이 생긴다면 나의 자녀들이 바뀌어야 한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내가 경험한 삶의 자리에서 형성된 '생활 양식' 즉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를 점검해 보고 먼저 내가 "~ 해야만 해" 라는 태도를 버리고 변화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어른들은 인생을 통해서 자신에게 형성된 고정된 틀로 인해 새로운 세대와 소통하고 새로운 세대와 삶을 이어가는 것이 힘든 반면 젊은이들은 현대의 가장 흥행하고 유행하는 트렌드를 무분별하게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나에게 좋은 것인지 아닌지 나에게는 해당되는 것인지 아닌지를 모른 채 유행이면 좋을 것이라 생각하며 따라가고 한 시대의 주류 사조를 무비판적으로 따라갈 때 우리는 자칫 부모의 유산으로 내려오는 좋은 삶의 양식까지 버리게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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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고 축복합니다. (God loves you and bless you)
Rev Dr. HUN KIM (김 훈)
내 안의 비판자와 격려자
필자가 어린 시절에만 해도 한국 사회는 어려웠고 부모님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아주 열심히 일을 해야 했다.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지친 탓인지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명령과 통제, 강요와 비난으로 훈육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들은 열심히 공부를 해서 부모의 노력에 마치 보상이라도 해야 하는 것처럼 요구를 당했다. 그런 부모님 밑에서 훌륭한 아이들이 나오기도 했지만 자존감이 낮고 무기력한 아이들이 나오기도 했다.
한 남성분은 아버지의 과도한 기대에 시달려야 했다.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야단을 듣고 게으르다고 야단을 듣고 성적이 잘 나오질 않았다고 야단을 들으면서 종종 멍청하다는 소리와 한심하다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 그런 소리를 듣고 자란 이 남성분은 아버지의 기대에 순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돈을 벌었고 가정에 보탬이 되려고 노력을 했다. 그런데도 아버지의 기대를 채워주지 못했다. 늘 부족한 부분에 잔소리를 듣기 때문이었다. 그랬던 이 남성분이 독립을 시도하고 빨리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그만 아버지처럼 강하고 자신에게 잔소리를 많이 하는 아내를 만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남성분은 자신을 비판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고 그 비판하는 내면의 소리 때문에 때로는 잠을 잘 자지 못하고 때로는 너무 괴로워 자신을 학대하는 상태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생각 외로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내면에 이런 비판자들을 한 명씩 데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내면의 비판자는 완벽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계속 비판을 하면서 완벽하기를 요구한다. 그 비판자의 소리는 "그 정도는 충분치 않아", "그것보다 더 잘 할 수 있잖아.", "처음부터 완벽하게 할 수 있어야 해", "너와 내가 한 것은 항상 완벽하게 보여야 해" 와 같은 것들이다. 이런 완벽하기를 요구하는 비판자의 말은 어떤 일을 시작하거나 최상이 되어야 하는 경쟁 상황이거나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이 판단 받게 될 때 주로 활성화되어서 나타나서 당신을 괴롭힌다.
또한 어떤 내면의 비판자는 죄책감을 계속해서 유발시킨다. 죄책감은 당신이 세상이나 다른 사람에게 위험한 존재로 보고 비난을 하여 무의식적인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당신을 괴롭힐 수 있다. 죄책감의 내면의 비판자는 다음과 같은 비판을 한다. "너는 나쁜 놈이야" "너는 네 자신이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해!", "너는 다치거나 죽거나 했어야 해", "어떻게 너는 이런 짓을 할 수 있었지!" 라는 것들로 죄책감을 들게 하는데 주로 당신이 누군가에게 끼친 고통이 생각나는 상황에서 또는 가족에 대한 책임을 생각나게 하는 상황에서 또는 당신과 다른 사람을 비교하는 상황이나 당신으로 인해 실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상황에서 주로 활성화 되어 당신을 괴롭힌다.
주로 이런 내면의 비판자의 목소리는 한 번의 경험으로 되진 않는다. 어린 시절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권위자들을 통해서 경험되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그들의 말은 우리의 삶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그 영향력이 클수록 반복된 비판자의 목소리가 진리처럼 일상 생활에서 그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 내면의 비판자의 목소리를 자기 비판과 낙심과 좌절로 받아들이지 않고 성장과 자신감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
첫 번째로는 내면의 비판자 대신에 내면의 지지자를 만드는 작업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제일 좋은 방법은 살아오면서 경험한 아주 좋은 사람을 떠올리는 것이다. 그 사람은 선생님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고 상담사일 수도 있다. 그들이 나를 어떻게 격려했는지를 기억하고 비판자가 내게 하는 비판의 소리가 나에게 영향을 끼칠 때 지지자의 격려를 통해 비판의 소리를 바꾸는 훈련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완벽주의 내면 비판자가 비판을 한다면 격려자를 떠올리며 다음과 같은 표현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이 정도면 됐어!", "그것이 세상의 끝은 아니야", "정말로 중요한 것은 바로 너야"," 모든 것이 완벽해야 할 필요는 없어" 또한 죄책감의 내면 비판자가 비판을 한다면 격려자를 떠올리며 다음처럼 스스로에게 표현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너는 충분히 고통을 받았어. 이제 네 자신을 용서할 시간이야", "과거는 과거야 ", "후회는 네가 한 행위에 대한 것이지 네 존재에 대한 것은 아니야". 평소에 비판자의 목소리가 자신의 내면안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의 경우 이런 훈련이 그냥 되기가 어렵기에 전문가의 도움을 통해서 비판자의 목소리를 낮추게 하고 격려자의 목소리가 더 커지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두 번째로 내면의 비판자의 목소리가 평소에 너무 커서 늘 우울하고 비관적인 사람일 경우 내면의 격려자의 목소리가 더 커지도록 하기 위해 매일 훈련을 하는 것이 필요한데 일지를 쓰는 것이 도움이 된다. 예를 들면 어떤 상황에서 내 내면에 있는 비판의 목소리가 활성화되어서 내 마음이 괴로웠는지를 기록하는 것이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래서 내 내면의 어떤 비판의 목소리가 활성화되어서 나를 비난했는지 그랬을 때 나는 어떻게 대처를 했는지? 나는 나의 내면의 지지자를 기억할 수 있었는지? 비난하는 목소리를 어떻게 격려함으로 바꿀 수 있었는지? 혹시 적절하지 못했다면 다음에는 어떻게 내면의 지지자가 나를 격려할 수 있을지 까지 기록을 해본다. 이렇게 기록을 하다 보면 내 안의 비판자의 목소리도 그냥 하나의 생각일 뿐 그것이 큰 힘을 가진 통제자로 내 마음 전체를 다스리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면의 비판자의 소리들은 사람으로 하여금 비판을 받고나서 자극을 받아 개선을 하여 발전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낙심하게 하고 무기력감에 빠지게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필자가 만난 많은 사람들은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또는 권위자들로부터 들었던 비판의 목소리로 인해 현재를 행복하지 않게 살아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더 이상 내면의 비판의 목소리가 나를 우울하게 또는 무기력하게 비난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내 안의 격려자가 떠 큰 목소리를 내어 앞으로 더 나아가서 활기찬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훈련하자. "내 모습 이대로 괜찮아."...
결혼연령
한국의 올 해 조사에 의하면 남자 평균 결혼 연령이 33.7세 그리고 여자는 31.3세다. 그 뿐 아니라 점점 더 결혼을 하는 사람의 숫자도 줄어들고 있다. 어떻게 된 것일까?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살게 하는 것일까?
A 여성은 20대에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만남을 줄이고 일에만 시간을 투자하다 보니 훌쩍 시간이 다 지나가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30대가 되었는데 이제는 결혼까지 조금씩 생각하다 보니 여러 사람을 다양하게 만나는 것이 쉽지 않게 되었다. 맘에 좀 드는 사람들은 이미 임자가 다 있는 것 같고 그렇다고 맘에 없는 사람과 결혼을 하기 싫어서 지금처럼 일을 하면서 가끔 친구들을 만나며 살고 있다고 한다. 이 경우에는 특별히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지만 결혼이 우선 순위에 있지도 않았고 적극적으로 배우자를 찾고 있지도 않는 경우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도 혼자서 살아가고 있다 보니 자신도 그것이 그렇게 나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성 남자를 만날 기회가 많지 않고 세월은 지나가는 것이다.
B 남자는 어린 시절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았다. 두 분의 결혼 생활이 전혀 행복해 보이지도 않았고 그런 중에도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밤 늦게까지 일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고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는 늘 지치고 불만스러워 보였는데 한 번씩 부모님이 다툴 때면 느껴지는 집안의 차가운 분위기가 너무 싫었다고 한다. 자신의 삶은 없고 자녀를 위해서 희생하면서 불행한 삶을 살아왔던 부모님의 모습이 행복해 보이지 않았기에 B 남자는 차라리 혼자사는 것이 훨씬 더 낫다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 경우에는 결혼 생활에 대한 기대나 희망이 없는 경우다. 부모님의 불행한 결혼 생활이 결혼에 대한 기대나 흥미를 갖지 못하게 했고 오히려 결혼 생활이 개인의 자유를 빼앗아 가는 족쇄가 될 수 있고 고통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더 초점이 있다 보니 결혼을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이유 외에도 요즘은 미디어가 발전하고 SNS가 발달을 하다 보니 예전에는 함께해야만 할 수 있었던 것을 혼자서도 시도할 수 있고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져서 외로움을 상대적으로 덜 느끼는 부분도 한 몫을 한다. 예전에는 길을 잃어버려도 우리는 당장 누군가를 필요로 했다. 이웃에게 물어 보아서 모르는 곳을 찾곤 했는데 이제는 사람이 아닌 핸드폰을 더 의존하고 AI를 더 의존할 때가 많다. 이런 것들이 타인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외로움이나 사회적 교류에 대한 필요성을 덜 인식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다 보니 이것이 결혼에까지 영향을 주게 된다.
그리고 개인주의나 자유주의가 많은 사람들에게 팽배하면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소속감이나 존중을 가정에서 느끼기를 원하기 보다 자기 자신의 자아실현을 위한 도구로 가정을 만들기 원하는 모습들이 많아지면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이 자신의 자아실현에 도움이 되기 보다 해가 되는 부분이 많기에 점점 결혼과 가정을 이루어 나가는 삶을 포기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 또한 자유주의로 사상으로 인해 성의 자유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하고 혼전 성관계에 대해서 당연한 것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해되므로 인해서 책임을 져야 하고 자녀를 낳아야 하는 전통적인 결혼관에서 점점 사람들은 벗어나기가 더 용이 해졌다. 이런 다양한 이유로 인해서 사람들의 결혼 비율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필자는 젊은이들에게 결혼이라고 하는 것을 꼭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살게 되긴 하지만 혼자사는 삶은 함께 살아가는 삶보다 행복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버드 대학에서 연구한 행복 과학은 결혼한 사람이 결혼하지 않은 사람보다 행복도가 높다고 이야기를 한다. 미국의 헤리티지 재단의 산하 디보스 센터에서는 실제로 결혼한 사람이 더 소득도 높고 더 오래 살고 건강도 더 좋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오르쇼이치 저자의 책 '죽을 때 후회하는 25가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죽을 때 후회하는 것 중에 하나가 결혼을 해보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자식을 낳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는 내용이 있다. 누구나 해보지 않은 일에는 후회를 한다는 것인데 그 중의 하나가 '결혼' 이라는 것이다. 40대, 50대가 되면 사람들은 제2의 사춘기를 경험하게 된다. 중년 위기를 겪으면서 상담실을 찾는 많은 사람들 중 혼자 사는 사람들은 외로움을 많이 호소한다. 중년이 지나고 나면 사람들은 여기 저기 한군데 두 군데씩 아프기 시작하고 점점 신체적으로 정서적으로 약해져 가는데 혼자 사는 사람은 몇 명의 친구는 있을 수 있으나 가족처럼 친밀하게 어려움을 나누고 돌 봐줄 사람이 없는 혼자일 때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이 약해진다. 사람은 서로에 대한 연대적 책임을 나누고 공동체적 힘을 가지고 있을 때 훨씬 더 건강해진다. 필자가 일하고 있는 생명의 전화에서 자살의 문제를 가진 사람의 경우 그 사람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를 평가를 하게 되는데 그 평가 기준 중에 하나가 지원을 해줄 사람이 누군가 옆에 있는가? 하는 부분이다. 가족이 함께 있는 경우 위험도의 수치가 훨씬 더 내려가게 된다. 가족의 한 마디 말과 지지가 큰 힘이 된다.
결혼 연령에 있는 많은 남녀 들에게 코칭을 해주는 '핸리 클라우드' 박사님은 생각보다 많은 젊은 이들이 여자들은 좋은 남자가 없고 남자들은 좋은 여자가 없다고 말하며 적극적인 만남의 기회들을 많이 만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주위에 사람이 없다고 말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좋은 만남의 기회를 많이 만들면서 결혼을 하기에 부족한 과거의 상처가 있다면 상처를 치료하고 결혼에 대한 노력을 한다면 누구나 좋은 인생의 반려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수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혼자사는 삶을 선택하기 보다 어느 저자가 말한 것처럼 자아실현의 도구가 아닌 결혼을 자아실현의 목적으로 삶기를 바란다. 이것은 개인의 삶에 유익을 줄 뿐 아니라 인류를 지속적으로 생존하게 하는 축복의 통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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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고 축복합니다. (God loves you and bless you)
Rev Dr....
불편한 감정
"비가 내린다. 아침부터 컨디션이 안 좋다. 환경적 자극이나 어려움이 온다. 슬프다, 불안하다, 화가 난다". 이런 불편한 감정들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한 엄마는 시집살이를 하면서 시부모님이 주시는 스트레스와 남편이 주는 스트레스를 참아내기가 힘들었는데 그렇다고 시부모님과 남편에게 대들 수가 없어서 첫째 딸에게 그 분노를 다 쏟아내었다고 한다. 아이에게 엄마가 힘든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이에게는 힘든 일인데 스트레스가 있을 때 마다 아이를 사정없이 내리쳤고 영문을 모른 채 그 아이는 수 없이 매를 맞으면서 자라나야 했다. 성인이 된 그 엄마는 어느 날부터 원일 모를 통증을 온 몸에서 경험하게 되어 정상적인 삶을 살아 내기가 힘든 사람이 되었다.
또한 엄마는 막내를 늦게 낳았다. 딸만 많은 집이었기에 아들이 태어난 것이 너무나 기쁘고 좋지만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아 아이를 보면서도 짜증이 날 때가 많아졌다고 한다. 남편이 아이를 돌 봐주기를 기대하지만 일로 바쁘게 뛰어다니는 남편은 실제로 도움이 별로 되지 않고 하루 종일 아이들과 씨름해야 하는 엄마는 자신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화를 낸다고 한다. 엄마의 야단을 듣는 아이는 자신도 모르게 자꾸 손톱을 물어뜯게 되고 그것은 엄마의 야단을 더 듣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불편함으로 다가오는 많은 감정들은 그냥 표출이 되진 않는다. 삶에서 다양하게 경험하는 일상의 경험들이 감정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아주 멋있는 사람을 보았을 때 가슴이 뛰고 설레는 감정을 경험하게 되고 소중한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 슬퍼하고 때로는 절망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아주 오랫동안 바라고 소망하던 일이 이루어지면 우리는 아주 기뻐하기도 한다. 이렇게 감정은 외부의 자극에 의해서 나타나게 되는데 적절한 감정은 우리의 삶에서 필요한 것이고 우리가 어디에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하는 지 우리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를 살펴보게 하는 좋은 신호등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불편한 감정으로 많이 힘들어 하는 사람들은 외부의 자극에 예민하게 반응이 되는 분들인데 유전적 소인으로 태어날 때부터 예민하게 태어난 사람도 전체 인구의 20% 정도 있긴 하지만 어린 시절에 자신이 감당하기에는 무리가 되는 큰 자극이나 트라우마가 될 법한 상처들로 인해서 신경 조절 체계의 경보음이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예민하게 반응되어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아주 어린 시절에 부모님이 이혼을 하게 된 경우 부모로부터 습득해야 하는 안정감, 소속감, 가치감 대신 불신과 불안감을 대신 경험해야 했을때 그것이 큰 상처로 남아 있어서 조금만 불안한 일이 닥치면 그것에 위험 경보 신호가 발동이 되어 나도 모르게 그 불안감을 주는 대상에게 짜증과 분노가 일어나는 현상을 경험하게 되기도 한다. 그 대상이 감당하기 만만한 대상일 경우 특히 그 부분이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고 그런 대상을 찾기가 어려울 경우에는 자기 자신에게 짜증과 분노를 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불편한 감정이 올라올 때 한 번씩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다.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이 지금 경험하고 있는 일과 비추었을 때 경험되어져야 하는 적절한 감정인지? 아니면 과거의 상처로 인해서 과민하게 반응하고 있는 감정인지? 아니면 유전적으로 나는 예민한 부분을 타고 태어난 사람이어서 매사에 예민하게 느끼고 반응하는 편은 아닌지? 를 점검해 보는 것이 감정이 나를 지배하지 않고 내가 감정을 조절하면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오늘 아이가 노느라 숙제를 하지 않았을 경우 엄마는 아들에게 실망을 할 수도 있고 하라는 것을 성실하게 하지 않는 아들이 염려스럽다. 엄마가 다양한 방식으로 훈육을 할 수 있지만 하나의 예로 "숙제를 하지 않았으니 오늘은 저녁에 보는 프로그램을 볼 수 없어!" 하는 벌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엄마가 느낄 수 있는 적절한 감정일 수 있고 적절한 훈육 방식일 수 있다. 그런데, 또 다른 엄마는 똑 같은 상황에서 말 안 듣는 아이를 보면서 결혼 이후 자신의 말을 전혀 듣지 않고 맘대로만 하는 것 같은 남편의 얼굴이 떠올랐고 순간 남편에 대한 분노가 아이에 대한 분노와 함께 떠올라 아이에게 폭풍 같은 분노를 쏟아낸다 "너는 왜 이렇게 아빠를 닮아서 속을 섞이니? 너, 엄마 죽는 꼴 보려고 그래? 너 하나 보고 내가 지금까지 참아왔는데 너까지 그러면 내가 어떻게 살라고 그래!" 라고 하면서 아이의 엉덩이를 후려친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해가 될 만한 감정이지만 적절한 감정이 아니고 과거의 상처로 인해서 과민하게 아이에게 반응하고 있는 감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자녀 양육을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유튜브라던가 방송 또는 책을 통해서 많이 배웠고 머리 속으로는 너무나 잘 아는 데 실제 삶에서는 늘 감정적 조절에서 실패를 경험하는 엄마들이 있다면 지식으로 아이를 키우려고 하기 보다 먼저 엄마가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작업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엄마가 불안하다 보면 그 불안감을 상쇄하기 위한 수단으로 아이에게 과도한 통제와 요구를 지속적으로 한다든가 아이에게 자신의 불안한 감정을 짜증이나 분노로 쏟아 내기가 쉽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다 보면 불안하게 하는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은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을 할 지 모르는 데 엄마가 불안하면 엄마는 그 불안감을 경험하지 않고 싶어서 미리 위험한 일을 하지 않게 당부하면서 아이를 소심하게 하는 일도 시도할 수 있는데 그러다 보면 엄마의 불안이 아이에게 자연스럽게 전수가 되는 일이 일어난다. 아이도 엄마처럼 세상은 불안하고 위험한 곳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 불편한 감정은 건강한 반응일 수도 있고 과민한 반응일 수도 있고 이해는 되는 감정이나 그 상황에는 부적절한 감정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나의 감정을 관찰하듯이 살펴보기 시작하면 감정의 홍수에 쉽게 지배당하기 보다 강한 감정의 힘을 약화시키는 법을 조금씩 배워 나가기 시작할 것이다. 불편한 감정도 나의 것이나 적절하게 그것을 잘 사용하는 법을 익히는 것이 무엇보다 일상생활의 행복을 지켜 나가는데 있어 참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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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고 축복합니다. (God loves you and bless you)
Rev Dr. HUN KIM...
부부 갈등
한 몸이 되어서 한 뜻으로 살아가기로 언약하고 시작한 결혼 생활이 만만하지 않습니다. 결혼 전의 모습과 바뀐 배우자를 보면 실망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세월이 가도 전혀...